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세상

저자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1-04-13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세상에 대하여『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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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에 읽은 책이 상당히 고되고 불만족스러웠기에 이번에는 시쳇말로 '안전빵'을 골랐다. 일본 비소설 저자로서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 바로 후쿠오카 신이치다.

후쿠오카 신이치 글의 장점이라면 역시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그는 글에서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즐거움을 내뿜지만 그의 글은 과학보다는 예술에 가깝다. 과학을 과학대로 풀면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내심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에도 예술적인 부분이 권두부터 등장한다. 이 권두화가 글 속에서 어떻게 화신으로 살아날지, 분자생물학과는 과연 무슨 관계가 있는지, 책이 독자를 유혹하는 제1원칙 '궁금하니 읽고 싶다'를 십분 만족시킨다. 

책은 후쿠오카 신이치의 경험담으로 다가온다. 이는 분명 인문학 도서이지만 '후쿠오카 신이치의 분자생물학 에세이'처럼도 다가오고 에세이는 역시 친숙하다. 본인이 겪은 사건, 그리고 그 사건에서 느낀 감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솔직한 감정(그러고 보면 일본인 저자들은 텍스트 안에서는 매우 솔직하다, 그들이 솔직하지 않다는 편견과 달리), 그로부터 얻은 삶에 대한 깨달음. 결국에는 인문학적 성찰로 이어진다.

국제 연구회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로, 모나리자 같은 명화에서 편의점 샌드위치로, 마지막으론 개인의 탐욕과 허위 성과의 탄로까지. 분자라는 미세 단위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 더불어 우주의 끈을 보는 자, 후쿠오카 신이치의 글엔 그런 경외감이 있다.

이런 좋은 텍스트를 발굴하는 은행나무 출판사, 훌륭한 번역 의식과 깔끔한 번역 실력을 가진 번역가 김소연님께도 감사한다. 




컨설턴트

저자
임성순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0-04-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완전범죄를 위한 시나리오를 쓰는 그 남자, 컨설턴트!201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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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도 모르게 살인을 하며 살고 있다. 무슨 범국민적 살인 모함이냐, 무고죄로 역신고하겠다 나오시면 곤란하니 일단 들어보시라. 개인의 한 가지 행동은 여러 과정이 겹치고 엮인 결과인 동시에 여러 결과를 낳는 원인이기도 하다. 내가 마시는 음료수 한 캔 때문에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 한 제3세계 어느 국가의 아이들은 음료수 공장에서 노동착취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또는 내 행동이 어느 마을 하나를 불바다에 휩싸이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눈치 챌 수 없다. 더욱 끔찍한 것은 혹여 우리가 눈치 채더라도 '그래서 뭐 어쩌라고, 어쩔 수 없잖아?' 하는 합리화이다. 기껏 연예인이나 부자들이 난민지역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그 지역이 아수라장이 된 배경에는 그들이 먹고 마시고 즐긴 행위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뒤틀린 세계에서 끊임없이 합리화를 하며 산다.

 

책은 살인 시나리오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주인공이 직접 살인을 하지는 않지만 그의 시나리오대로 회사는 헛점없는 완벽살인을 이뤄낸다. 처음에는 물론 그저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줄만 알았던 주인공. 하지만 회사가 제공한 캐릭터의 정보는 실제에 바탕을 두었으며 그 정보를 엮어 만든 소설이 실제로 실행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미약한 발버둥을 쳐보기도 하지만 결국 합리화라는 카드를 꺼내드는데...

 

글의 매력이 상당하다. 플롯이 상당히 짜임새 있기에 읽다보면 다음 내용 나아가서는 결말이 어떻게 될까 굼금해지고 책을 덮기 어렵다. 자세한 묘사와 설명들도 뛰어나다. 매 살인사건을 다룰 때마다 대충 넘어가는 일 없이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다. 덤으로 실린 암살단 정보, 스탈린 관련 역사 지식, 메탈리카의 음악 등 풍부한 인문학 지식들이 지루하지 않게 하며 약 300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사회비판을 기본으로한 메시지의 통일성도 분명하다.

 

아쉬운 점이라면 메니저와 결혼함으로써 주인공은 결국 끝까지 합리화를 고수했다는 점이다. 결국 이 세상을 지배하는 부도덕함과 이에 거스를 수 없다는 허무함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기껏 콩고에 고릴라를 보러 가는 것보다는 더 대담한 모험이 하나라도 섞여있었다면 읽는 이는 잠시나마 통쾌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소설의 말미에 가서 '어쩔 수 없다'는 문장을 남발한다. 읽는 이들이 그동안 읽어온 내용을 책을 덮을 때마다 잊는 병이라도 걸리지 않았다면 '합리화'를 주로 다루고 있다는 걸 안다. 구태여 직설법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었을까? 상황이나 은유를 활용하는 편이 더 강렬하게 남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작품 분위기가 시종 진지하다. 그런데 가끔 섞여나오는 시쳇말로 '개드립' 말장난은 역효과.



생물과 무생물 사이

저자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08-06-13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일본 산토리학예상 수상! 일본 신문ㆍ잡지 서평담당자가 뽑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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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동적평형으로 한 번 만난 적이 있던 후쿠오카 신이치의 다른 책이다. 동적평형이란 책이 동적평형이라는 상태에 대한 전문서와 비슷한 느낌을 풍겼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장르를 섭렵하였다고 평하고 싶다.

 

책은 우선 회상기(記)로 시작한다. 작가가 미국에서 연구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맨해튼의 주변 경관을 묘사하며 에피소드를 하나 건넨다. 부드럽게 이야기는 작가의 전문분야인 생물학으로 이어지고 장르는 전문서로 바뀐다. 개인에 따라서는 복잡하고 어지럽게 받아들일 지도 모를 전문용어들이 만개한다. 이 장르 전개변화 속에서 후쿠오카 신이치가 훌륭한 박사이기도 하지만 또한 뛰어난 글쟁이임을 깨닫는다. 쌀밥을 한 숟가락 먹고 김치를 베어먹듯, 고기를 한 점 먹고 야채를 집어먹듯. 자칫하면 질릴 만한 전문지식의 줄에 적절히 작가 개인의 에피소드를 섞거나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섞어 넣는다. 이 조합이 묘하게 연결되어 쉽사리 질리는 기미가 오지 않는다. 오히려 목표한 페이지까지 읽은 뒤에도 뒷내용이 궁금해 잠시 책갈피 해두기가 아쉬워지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쭈욱 문과학생이었던 내가 이과 전문 지식에 이렇게 빠져들게 만들다니. 더이상의 설명은 무용.

 

책의 메인 테마는 '생물에 대하여'이다. 인간의 호기심과 욕심은 생물의 세포를 분자 단위 아니 더 정밀한 단위까지 해부해 볼 수 있도록 고취시켰다. 그 작업의 선단에 있던 후쿠오카 신이치, 이 사람의 작지만 우주를 품은 물음 '생물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어 수년간의 연구를 거쳐 답을 농축하는 과정이 이 책이다. 그리고 그 답은 매우 의외이며 또는 매우 평범하다. 책에서 확인해 보시길.



남쪽으로 튀어. 1

저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06-07-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현대인들에게 통쾌하고도 유쾌한 처방전을 제시해준 공중그네,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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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과격파 운동권 출신. 운동권 은퇴(?) 후 놈팽이 아버지로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또다시 사건에 말려들자 온가족은 오키나와로 탈출을 시도하는데...소설은 파란만장한 가족의 둘 째 아이, 지로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의 첫 권은 초등학교 6학년생인 지로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때문에 그 시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 사춘기의 복잡미묘함, 유년문화가 뿜어대는 그리움 등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도드라지는 점은 그 어린시절에도 힘의 다툼이 있고 약육강식에 지배당함을 놓지지 않고 잡아낸 부분이다. 크고 작은 초등학생들 사이의 사건으로 명랑함을 더해가지만 사회문제를 등한시하지 않은 작가의 눈초리가 빛난다. 그리고 이는 소설 전체의 흐름과도 상통한다.

 

두 번째 권은 오키나와로 이주한 이후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탈출지에서 조차 안빈낙도한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고 또다시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는 무정부주의자 가족. 자본과 시스템이 엄습하는 이 땅에서 과연 이 가족이 갈 곳은 어디인가?

 

이라부 시리즈로 익숙한 오쿠다 히데오의 진면목을 발휘한 작품이다. 이라부 시리즈에서도 그랬듯 오쿠다 히데오는 절대 사회현상, 사회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글이 딱딱하지 않은 것은 그의 명랑 발랄한 문체에 있다. 이 작품만 해도 그렇다. 2권의 중반부 본격 갈등이 고조되는 부분에서

경찰, 개발업자, 지역주민, 심지어 외국인까지가 난장판 갈등을 빚는데도 경찰과 외국인이 지로의 누나를 놓고 줄다리기하는 코드를 심어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키득거리며 읽어도 뇌리에는 현재 사회의 문제의식이 자연스레 상기된다.

 

무엇보다 이 사람의 글감은 도대체 끝이 어디려나, 이라부 시리즈는 환자들의 다직종으로 폭을 넓혔다면 남쪽으로 튀어!는 글감의 토털패키지라 할 수 있다. 대충 기억해 보아도 이 두 권에 남녀, 좌우와 아나키스트의 정치 대립, 자연보호, 신화, 약육강식 등을 꽉꽉담았다. 더군다나 그 어느 글감도 시쳇말로 '쩌리'가 아니라 다들 한몫한다는 점이 혀를 내둘게 된다.

 

그러다보니 안 재밌기가 더 힘들다. 호광성 곤충이 야외전등에 이끌리듯 한번 잡으면 놓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니 주의하시라!




동적평형

저자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0-03-24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살아 있음'에 대한 비밀과 미스터리!우리는 살아 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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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가 들려주는 '생명'

 

우리 몸은 언뜻 보기에 고정된 단단한 물체로 보이지만, 사실 온몸의 세포 하나 하나가 죽고, 새로 태어나서 죽어나간 자리를 메꾸고 있다. 우리 몸만이 아니라 동물, 식물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그러니까 그곳에 존재 하는 게 아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라 해야 옳다. 이 상태를 '동적평형'이라 한다.

 

하지만 산업화와 기계화를 이룬 인간은 이 자연이 택한 동적평형 상태를 거스른다. 모든 문제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노화방지제 같이 자연스레 죽어가는 세포의 흐름을 억지로 막는 일. 이같은 행위는 동적평형상태, 즉, 흐름의 상태를 막는다. 유전자 변이 농산물은 인간과 자연이 준 음식물 사이의 동적평형을 깨트린다.

 

자연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발버둥친 인간은 그 동적평형의 파괴주체이며 때문에 자유는커녕 위기만 얻는 꼴이 되었다. 따라서 이 동적평형을 이해하여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직관, 그러니까 생물체가 자연과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물질로 존재한다는 환상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먹은 것이 우리를 이루고 다시 배출되듯 우리는 그 흐름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 몸이 2를 넣으면 2가 나오는 기계와도 같다는 생각이 그동안 의학, 과학, 경제계를 지배해 왔다. 이제는 그 잘못된 오류를 버려야 할 때라는 것이 책의 메시지이다.

 

책에서 인용하자면 '직감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직감으로 인해 야기되기 쉬운 오류를 분간하기 위해, 혹은 직감이 파악하기 어려운 현상에까지 상상력이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자유로 인도한다.

 

책 겉표지에 적혀있듯 '읽고 나면 세상이 달라져보이는 매혹의 책' 그대로다.



내 심장을 쏴라

저자
정유정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09-05-2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새로운 인생을 향해 탈출을 꿈꾸는 두 청년의 분투기!200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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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는 심리를 주된 이야깃거리로 삼은 정신병원활극이다. 
작가가 간호대출신이며 책의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직접 정신병원에서 취재를 했다는 점에서 그 디테일은 더욱 살아난다. 듣도 보도 못한 병명과 전문용어가 가끔 튀어나오지만 정말 가끔이라 가독성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작가의 썰풀이 능력이 빛난다. 인위적 복선장치를 깔지 않고도 사건 간의 체인이 구리스 바른 듯 부드럽다. 이 부드러움 때문에 딱히 지루하지도 않으며 툭툭 던져나오는 블랙코미디가 쉽사리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덕분에 새벽잠을 자야했다. 침대머리에서 잡으면 놓기가 어려워서.


폭이 넓다. 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자유를 향한 갈망과 통제, 병원 밖에서 존재하던 환자들마다의 사연, 배경에 상관없는 인물의 내적 갈등. 이 넓은 스펙트럼의 이야기를 340페이지 남짓한 종이에 우겨넣었음에도 우겨넣은 티는 나지 않는 훌륭한 책이다.

 

트라우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특정 사건이나 외상 후에 정신적 스트레스로 남아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인류의 운명과도 같은 적. 내 심장을 쏴라는 트라우마를 멋지게 극복해낸 옵티미즘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극복과정에서 한 편의 버디무비 같은 통쾌함이 있었다. 어찌 보면 승민이 비바람 치는 하늘을 활공하던 행글라이더처럼. 수명이 당당하게 퇴원하는 그 순간처럼. 소설에 한정해서는 지극히 해피엔딩을 선호하는 나는 웃음을 띄며 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표지 일러스트를 보고 흠칫했다. 낯이 익다. 이것은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에서 봤던 그 그림체가 아니던가?! 역시나 책장에서 사과는 잘해요를 찾아보니 내 심장을 쏴라와 마찬가지로 오정택이란 분이 그리셨다. 사과는 잘해요도 빼어난 작품이었는데 오정택 씨는 좋은 글만 찾아서 그려주기가 방침이라도 되는가? 이거 작가가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 보고 책 고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동경만경

저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04-09-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장편소설. 지하철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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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이야기를 만난 건 2004년이었다. 그 때 한창 일본 드라마에 빠져있었는데 신작으로 동경만경이라는 드라마가 떴고 그게 우리의 처음이었다. 신나게 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카마 유키에라는 일본 국민배우가 주연하고 남주인공은 약간 올챙이두겁을 뒤집어쓴 인상인, 미남배우를 평가하는 한일의 가깝지만 먼 기준을 느꼈던 드라마였다. 그리고 삼일 전부터 책으로 다시 만나 원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드라마는 원작이 꽤나 각색했다. 시대배경으로 한창 한류열풍이 불던 때이기에 여자 주인공은 재일한국인 2세로 나온다. 곧 재일교포와 일본인들 사이의 마찰이 등장한다는 소리다. 또한 남자 주인공의 원작은 선박화물을 다루는 노동자에서 끝나는 데 반해 드라마에서는 일본전통서예 아티스트를 꿈꾸는 노동자이다. 플롯도 차이가 난다. 드라마는 사랑, 인종, 꿈까지 토털패키지를 담는데 원작은 연애소설 그 본질에 가깝다. 총평을 하자면 드라마는 토털패키지를 잡으려다 죄다 놓친 망작에 가깝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는 하나 내 기억에 이렇게 안 남을 정도면 분명 좋은 드라마는 아니었을 게다. 따라서 원작에 손을 들어준다.

 

 이제 본격 책 이야기를 해보아야겠다. 흔히 세상은 연애라는 심상을 이야기 할 때 화성남 금성녀에서처럼 서로 다른 이해와 강조 포인트를 역설하기 바쁘다. 남녀 사이의 건널 수 없는 무언가를 강조한다. 마치 남녀를 이종異種 다루듯 한다. 꽤나 논쟁과 화두를 불러모을 떡밥임이 분명하긴 한가 보다. 동경만경도 예외라고 볼 수는 없다. 갈등의 단계가 한창인 시점에서는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대화, 오해로 인한 어긋남 등을 등장시키고 틈을 고조시킨다. 그런 점에서 시나가와 여자, 오다이바 남자. 가깝지만 분명 분리된 배경장치. 이것을 적절하게 활용한 작가의 솜씨는 귀신같았다. 이야기는 이곳이어야만 했다. 그리고 작가는 류스케를 통해 이 배경을 초월하려는 마지막 고백이자 시도를 한다. 차이를 머리로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초월의 경지인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솜씨 좋게 빚어냈다. 오랜만에 만난 가슴벅차게 깔끔한 결말이다.

 

요전에 동작가의 작품 악인을 읽었다. 아마 이 북로그에도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시다 슈이치의 글은 차갑다. 배경묘사에는 어떠한 심리 반영이나 복선 따위를 찾아보기 어려운 절제가 느껴진다. 차라리 필요없지 않을까하는 배경묘사까지 있다. ㅡ그렇다고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 같은 극초박형절제는 아니다.ㅡ 따라서 이런 연애소설보다는 악인 같은 글이 본재주 펼치고 훨훨 날아가는 글이라 여겼다. 내 얕은 안목일 뿐이었다. 억지로 배경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뻔뻔하게 보이는 작가들보다 훨씬 담백한 말투일 뿐이었고 싫지 않다.

 

류스케의 멋지지만 그다지 포장하지 않은 대사. 멋진 대사는 저렇게 날려야 하나 싶다. 여심을 사로잡고 여운을 남기려면 저정도는 되어야지. 시나가와 부두에서 오다이바까지 대충 1Km는 될텐데, 아 이거 나도 수영 배워야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