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저자
설흔 지음
출판사
예담 | 2007-07-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조선 최고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 비밀은 무엇일까?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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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문장가 연암 박지원. 이 책은 직접 우리가 제자가 되어 연암의 글쓰기 비법을 배우도록 이끈다. 비록 완벽한 사실을 기초로 한 것이 아닌 팩션소설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 방식을 썼기에 가공인물인 연암의 제자 박지문에 독자는 완벽한 이입을 느낄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우선, 복합장르에서 느껴지는 충만함이 기분 좋다. 얼마 전 드라마로도 방송한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 큰 인기를 끈 점을 주목해본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극, 즉 그 자체로 팩션인 역사극에 끌린다는 것이 이미 자명한 정설이다. 이 책 또한 옛 위인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를 다룬 일종의 사극 소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기의 요소를 최소한으로는 보장받은 셈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ㅡ서명 그대로ㅡ좋은 글쓰기를 배우는데 도움을 주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이 책 한 권으로 연암식 글쓰기 원리, 실전수칙, 나아가 글쓰기의 자세까지 체득할 수 있다.

 

또한 짜임새에도 점수를 주고 싶다. 연암의 아들인 종채를 주인공으로 삼은 노란 바탕 페이지와, 지문과 연암을 주로 다룬 흰 바탕 페이지가 교차한다. 이로 독자는 작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휴식점을 찾고 잠시 머리를 정리하고 넘어가기 용이하며, 마치 사극에서 배경이 전환되며 새 이야기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몰입성 또한 뛰어나다.

 

연암 자체에 관심이 있는 독자,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 사극식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 새로운 방식으로 독서의 새 재미를 찾는 독자. 추천할 독자 성향이 다양하고 그만큼 폭넓게 읽히기 좋은 책이다.



말이 인격이다

저자
조항범 지음
출판사
예담 | 2009-01-09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당신의 인격이 드러난다! 품격을 높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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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중요성은 말로 다 못할 만큼이다.' 언뜻 그럴싸해 보여도 약간 모순되어 보이는 이 문장. 하지만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나 예로부터 '예'를 중시했던 동아시아권의 화법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화자의 품격을 높이고 청자에게는 예의를 다하는 화법. 그것을 위해 조향범 교수가 펜을 들었다.

 

우선 3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인 '상사가 차마 지적 못하는 우리말 예절'과 3부인 '승진하려면 꼭 알아두어야 할 상황 표현'은 그렇다 치고 2부, '직장 상사도 모르는 우리말 표현'은 부에 속한 컨텐츠들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부명을 짓는 센스가 부족한 걸까? 그냥 잘못 알고 쓰는 단어나 표현 정도이지 직장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또한 3부에서는 흔히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예절어법 책들과 딱히 차별화된 점을 찾기 어렵다. 컨텐츠의 양은 현저히 부족하다.  우선 책 페이지도 270페이지 남짓으로 양이 심히 부족하다. 정말 이정도 양으로 화자의 인격을 격상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양에 비에 너무 허장성세한 서명을 달았다.

 

나름 국어, 우리말 예절에 베테랑인 저자가 적당한 노파심으로 본인의 경험과 에피소드를 끌어들여 독자와 친숙하게 하려한 접근법은 읽기 편하게 해주는 맛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부족한 점 지적받아 마땅하다. 내용에 틀림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무 적다. 이정도의 서명을 달고 나왔으면 기세좋게 두툼하게 보여줬어야 한다.

 


우연한 여행자

저자
앤 타일러 지음
출판사
예담 | 2007-07-1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89년 종이시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앤 타일러의 대표작.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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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메이컨이란 남편은 모든 일을 베틀에서 옷짜듯 꼼꼼히 짜야한다. 항상 같은 식당에서 밥먹길 원할 만큼 정해놓은 틀에 산다. 그 틀에서 벗어날 때마다 편하지 않고, 아니 틀에서 벗어나지조차 않는다. 반면 아내 세라는 여러 식당에서 밥을 즐기길 바라고 취미로는 조각을 하는 유동성 있는 여자다. 이 부부는 아들이 있었는데 살인사건으로 잃고 만다. 그일이 도화선에 불을 붙여 그렇지 않아도 휘청거리던 부부사이를 별거로 이끌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이 거리감이 소설 안에 시작부터 끝까지 흐른다. 물론 중간에 뮤리엘이란 여자가 튀어나와 둘 사이에 끼어들어 자칫 지루할 뻔한 플룻을 재밌게 엮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책을 반쯤 읽었을 때까지 철썩같이 덮어두고 믿었다. 뮤리엘은 그런 감초라고 말이다. 당장 입에는 쓰지만(읽는 책이니까 정확히 말하면 눈에는 따갑지만) 결국에 가서는 세라와 메이컨 사이를 더더욱 단단히 맺어줄 그런 인물인줄로만. 하지만 이게 웬걸. 메이컨은 뮤리엘을 택한다. 내가 읽으며 기껏 촉매제로, 아니 큰 의미를 준다고 해도 둘이 더욱 애절하게 해주는 그런 여자로 여겼던 여자를 작가는 그 누구보다 뮤리엘을 무겁게 다뤘겠다 싶었다. 비록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사람이 메이컨일지라도 말이다.

변화라는 코드를 잡으면 흐름이 보인다

어찌 보면 사랑을 다뤘다고 할 수 있고 어찌 보면 결혼생활을 다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정의한 이 소설은 '변화'다. 한 사람 한 사람 변화를 겪고 그 변화가 위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 자세히 보자면 굳은 메이컨과 흐르는 세라 사이에 있는 갈등이 별거를 불렀다. 그렇게 떨어져 있는 사이 메이컨에게 나타난 폭탄과 같은 뮤리엘이 메이컨을 변하게 만든다. 이 변화가 가장 크다. 그리고 세라는 별거를 거쳐 메이컨과 함께하던 때엔 못했던 자기 성격을 따라 '마음껏 흘러보기'를 즐긴다. 다른 남자도 만나봤고, 밥먹는 일 하나에도 틀에 박힐 일이 없었고, 좋아하던 조각도 마음껏 배워보았다. 하지만 결국 메이컨을 그리워하고 자기를 변화시켰다. 메이컨에 맞추기로 흐름을 멈추었다. 그러나 메이컨 곁으로 돌아갔을 땐 이미 늦었다. 메이컨은 뮤리엘을 만나 흐르기 시작했다. 몸은 세라 곁에 돌아왔지만 흐름은 멈출 줄을 몰랐다. 기껏 멈추었더니 남편은 반대로 흐르고 이 얼마나 억울한가.

영원히 삐걱 거려야 하는, 크기 안맞는 톱니바퀴 같은 두 사람 관계

슬픈 연극을 한편 본듯 한 마음이다. 작은 변화 하나 하나들이 잔물결을 만들었다. 이것이 뭉쳐 파도가 되고 세라로 가야할 뱃길을 뮤리엘로 이끈 기분. 그리고 그 작은 변화란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두 사람의 손에 놓인 일이 아니라 컨트롤할 수 없는 사고ㅡ아들이 죽은 일ㅡ다. 정작 당사자들은 의도하지도 않은 사고로 변했다. 삶은 그런 걸까? 지금까지 나라는 커다란 퍼즐판에 그런 내 의도완 상관없이 날 바꾼 사고들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그리고 그때마다 난 인식했나? 문득 덧없음이 스친다. 의도하지 않은 변화는 결과가 좋든 아니든 슬픈 심상으로 남는다. 우연한 여행자는 바로 그것을 잡아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