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2-06-2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소소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하루키의 에세이!세계적인 작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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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 사람들만 그런지 몰라도,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재미있지 않아?"라고 물으면 다들 목을 시소 태우며 "응, 맞아!"라고 대답하곤 한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에세이가 더 재미있는 이유. 상실의 시대나 1Q84, 해변의 카프카 같이 해설이 필요한 작품과 대조되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해답을 에세이가 실린 곳에서 찾는다. <앙앙>이라니. 일본 잡지 중에서도 연예, 예능을 주로 다루는 월간지이다. 아무리 편집부가 "무라카미 글이면 무엇이든 좋다!"라고 결정했다손 치더라도 어느 정도의 방향성이 같지 않다면 싣지 않을 터. 애당초 하루키의 에세이 몇 편을 보고 이거라면 우리와 맞다 싶어 섭외했을 가능성이 더 크겠다. 그러니까 연예지에 어울릴 만한 에세이란 말이고 그 에세이를 은 것이 <무라카미 라디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이다. 즉, 연예가십지를 재밌게 읽는 독자라면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도 빠져들 유전자를 가진다는 말. 그리고 연예지 독자는ㅡ비록 구매형 독자는 아니더라도ㅡ 소설 독자보다 월등히 많을 것이다. 동류의 잡지들이 미용실만 가도 넘치니까.

이렇게 확고한 지지기반을 갖는 저자의 책을 발행할 기회, 어느 출판사나 고대하는 일일 터다. 그 기회가 비채라는 출판사에 돌아갔다. 그렇다면 비채는 과연 어떻게 빚어냈을까. 우선 전작인 <무라카미 라디오>를 만들어낸 무라카미 하루키 글, 오하시 아유미 일러스트 콤비를 유지했다. 그 어느 출판사라도 깰 수 없는 배트맨&로빈의 관계였을 것이다, 혹은 보니&클라이드거나. 마찬가지 번역가 권남>희 씨의 번역도 변함이 없다. 이 부분이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옛 TV판 더빙영화들을 보면 특정 배우의 목소리는 특정 성우가 전담한다. 다른 영화로 바뀌어도 그 배우의 더빙 목소리는 늘 그 성우이다. 늘 아쉬웠다. 만약에 저 목소리를 다른 성우가 했더라면 하는 기대. 그 아쉬움이 고대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와 권남희 씨에 겹친다. 권남희 씨의 번역이 거칠거나 부족하거나 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다른 스타일의 번역으로 읽고 싶다는 느낌에 가깝다.

때문에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무라카미 라디오>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딱히 전작에 밀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뛰어넘을 요소도 없다. 물론 하루키의 독특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작과 동일하게 신선하다. 그러나 포맷의 신선함이 없다. 내용상에서 동일한 신선함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싶지만 문제는 <무라카미 라디오>는 내용은 물론 포맷도 신선했다는 데에 있다. 어려운 일이다. 전작의 성공을 답습하느냐, 위험하지만 변화를 주느냐. 변화를 주었다면 준 대로 나름 흠 잡을 데가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답습한 만큼 한 대로 흠이 드러날 것이고. 어디까지나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이고, 해야 하는 지적이라 생각한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가 가벼운 에세이로서 가볍지만 때로는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찾는 독자에게 적합한 책임은 변함이 없다. 그 재미도 변함은 없다.



보수를 팝니다

저자
김용민 지음
출판사
퍼플카우 | 2011-11-1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진보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보수 완전정복 교과서’!대한민국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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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나꼼수 임원들이 쓴 책들(이하 나꼼수 시리즈)이 연일 인기 행진을 구가하고 있다. 다른 책들도 여럿 있으나 이 책만을 고른 이유는 개중에 가장 실용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보수를 속속들이 파해치겠다는 모토로 나온 책이고 그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인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무엇보다 깊이다. 예상했던 대로ㅡ그리고 나꼼수 시리즈가 그러하듯이ㅡ 독자층을 '정치라면 남의 일인 줄 알알고 지내는 정치초보'로 맞춘 듯하다. 때문에 이해하기 쉬운 문체는 빛이 나나 책의 모토인 '속속들이'에 충실하지 못하다. 실례로 친이 친박 계열이 어떻게 다른 양상을 보이냐는 저들은 왜 같은 당 내에서도 저렇게 다른가를 생각해보고 찾아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데 김용민은 이에 모태 보수, 기회주의 보수라는 알기 쉬운 명칭을 덧붙이는 정도에서 더 후벼파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충분히 연구 대상이며 지피지기 백전백승의 전법 차원에서도 이 책은 당위성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내용은 가이드북이나 입문서의 틀을 깨지 못한 것도 분명하다. 개인적인 기대 수치에 닿지 않았다고 이 책을 비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보수를 뼛속까지 후벼파서 분석해 놓은 책은 아니며 이를 기대하시는 독자라면 다시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아직 정치적 기준점이 
서지 않은 지인에게 선물하여 우리편(?)으로 오게하는 용도로는 충분할 것이다. 

아, 그리고 용어의 개념 정의가 잘못된 것은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다. 책은 일관되게 '보수'를 특정 모당을 부르는 다른 명칭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분명 잘못이다. 그 점은 김용민도 분명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왜 언급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밝혀두는 것이 진보주의자 입장에서도 정정당당한 시비(?)가 될 터인데 이래서는 독자가 보수 자체가 악인 것처럼 받아들일 우려가 있다. 그냥 그 '특정 모당을 팝니다'로 나왔으면 어땠을까? 훨씬 시원하지 않았을까?  




세계 정복은 가능한가

저자
오카다 토시오 지음
출판사
파란미디어 | 2010-11-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결국, 세계 정복은 가능하다!현대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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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복, 이상으로만 두지 말고 실사에서 생각하라, 세계 최초... 일지도 모르는 세계 정복 실용서

 

일본 오타쿠계의 전설 별명하여 오타킹 오카타 토시오가 재어본 세계 정복 가능성. 과연 현실에서 세계 정복은 가능할까? 어찌보면 이미 부정의 답을 내포하고 있는 이 서명은 자체로도 독자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그동안 세계 정복이라는 코드가 주로 등장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특수촬영물을 예로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오타킹'이니까. 애니메이션이나 특수촬영물에서 악의 세력이 주로 주장하던 세계 정복이란 너무나도 추상스러움에 혀를 찬 저자는 현실에서 세계 정복이란 무엇이며 과연 가능은 한가에 대해 실날하게 200페이지 남짓을 할애했다.

 

우선 발상 전환 차원에서 두둑한 점수를 준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 정복이란 코드는 그저 악한 것, 혹은 악한 자가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세계 정복이란 의외로 일반 직장에서 버는 수입보다 심각하게 적자가 나는 사업이라고, 아무래도 악으로 뭉친 집단이다보니 정의를 내세운 집단보다 내부붕괴의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래, 정복했다 치자 그래서 어쩔건데?'를 집어낸 부분에서는 아, 그렇네 싶어서 매우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 기껏 적자 내며 정복해 놓고 저런 우수에 젖어야 한다니 이래서야 정복한 의미가 없지 않은가? 세계 정복이란 의외로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고, 정복자에 연민까지 느끼다 보면 그제서야 작가의 발상 전환 능력이 대단함을 깨닫는다.


여담으로 일본 분석계 서적 저자들은 대개 연민을 목표로 삼고 분석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고등학교 시절에 사서 읽은 '공상비과학대전'에서도 느꼈던 바다. 결국 이들이 어떠한 강력한 자, 집단을 현실에 맞춰 분석하고 나면 어느새 그 강력함은 풍선에 침주듯 푸욱 꺼지고 되려 연민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결국 저것밖에 안 되는 악인이었다니'하며 말이다.

 

적은 페이지나마 인문학 교양을 나름 채워넣은 점도 만족스럽다. 후반부에 가서 현 미국의 제너럴 스탠다드 정책에 대한 언급, 로마의 유럽 정복 양상, 현대사회에서 계급은 존재하지 않으나 계층은 존재한다는 이론 등, 오타킹이 지은 책이 사회고찰로 흘러가 적지 않은 감탄과 어이없음이 공존하였지만 아무래도 감탄에 더 기울었다.

 

문제는 역시 오타킹이 지은 책 답게 초중반부에 나오는 예시가 전부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이래서야 애니메이션이나 특촬물에 관심없는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상당한 배경지식 부족이 두드러진다. 심지어는 '애니메이션 좀 챙겨볼 걸'하는 사회주류는 절대 하지 않을 이상한 후회까지 들었다. (물론 잠시 머리를 흔들며 제정신을 차리긴 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애니메이션을 챙겨보지 않은 것이 그렇게 후회할 짓은 아니니까.) 그만큼 후반부를 제외하고는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굳이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 번역가인 레진이 달아 놓은 주석을 꼬박꼬박 읽어야 한다. 이게 또 고역이다. 레진이라 하면 한국의 오타킹이 아니던가? 더 이해하려고 읽는 주석이 되려 더 꼬이게 만드는 그들만의 세계.

 

이런 책은 역시 청량서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시원하고 읽으면서 피식거리게 되고 나름의 가르침도 있고, 청량음료의 높은 당수치와 같이 약점도 확실히 보이고. 하지만 그게 청량의 기본 아니던가. 오타쿠 코드를 살짝 너그럽게 봐주며 읽는다면 즐겁게 가볍게 읽기에 안성맞춤! 



말이 인격이다

저자
조항범 지음
출판사
예담 | 2009-01-09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당신의 인격이 드러난다! 품격을 높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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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중요성은 말로 다 못할 만큼이다.' 언뜻 그럴싸해 보여도 약간 모순되어 보이는 이 문장. 하지만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나 예로부터 '예'를 중시했던 동아시아권의 화법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화자의 품격을 높이고 청자에게는 예의를 다하는 화법. 그것을 위해 조향범 교수가 펜을 들었다.

 

우선 3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인 '상사가 차마 지적 못하는 우리말 예절'과 3부인 '승진하려면 꼭 알아두어야 할 상황 표현'은 그렇다 치고 2부, '직장 상사도 모르는 우리말 표현'은 부에 속한 컨텐츠들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부명을 짓는 센스가 부족한 걸까? 그냥 잘못 알고 쓰는 단어나 표현 정도이지 직장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또한 3부에서는 흔히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예절어법 책들과 딱히 차별화된 점을 찾기 어렵다. 컨텐츠의 양은 현저히 부족하다.  우선 책 페이지도 270페이지 남짓으로 양이 심히 부족하다. 정말 이정도 양으로 화자의 인격을 격상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양에 비에 너무 허장성세한 서명을 달았다.

 

나름 국어, 우리말 예절에 베테랑인 저자가 적당한 노파심으로 본인의 경험과 에피소드를 끌어들여 독자와 친숙하게 하려한 접근법은 읽기 편하게 해주는 맛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부족한 점 지적받아 마땅하다. 내용에 틀림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무 적다. 이정도의 서명을 달고 나왔으면 기세좋게 두툼하게 보여줬어야 한다.



번역투의 유혹

저자
오경순 지음
출판사
이학사 | 2010-07-31 출간
카테고리
외국어
책소개
『번역투의 유혹』은 저자가 번역을 해오면서 입말과 글말, 번역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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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받던 일본어 번역계에 훌륭한 실용서 출현

 

결코 일본어 번역서적량이 적은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서점에 가도, 인터넷 서점을 뒤져도 일본어 번역 관련 책은 부족하다. 물론 영어 번역 관련 책에 비해서 말이다. 이 경향은 영어중심의 삶, 또 영어 번역서 중심의 독서를 하는 우리들의 실상을 잘 대변한다고 할만 하다. 당장 번역가 지망생들의 필독도서라 불리는 '번역의 탄생'도 기본 영한 번역을 다루기 때문에 일한 번역가 지망생들은 별을 길잡이 삼아 밤길을 가던 고대인들이 별이 뜨지 않는 흐린 밤하늘을 맞이 한 것처럼, 빼도 박도 못하는 요상한 처지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아주 없는 것은 또 아니어서 가끔 몇 권씩 나오긴 하는데 대개 개념을 두루뭉술하게 다룬 책, 이론에 그친 책이 많다. 하지만 오경순씨가 지은 이 책은 그야말로 실전, 실용에 대비한 일어 번역 실용서이다.

 

번역을 논하는데 골자는 바로 오역과 번역투이다. 역사와 세월 속에서 우리 국어에 간섭한 일본어 말투를 버르집어 옳게 번역하자는 목표로 저자는 '강의'를 시작한다. 별세하신 훌륭한 한글학자 이오덕 선생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번역은 물론이거니와 실제 작문, 발화에서도 써왔던 표현과 단어가 사실 우리말 어법에 어긋나는 것이며 일본어 번역투였다니 뜨끔뜨끔한 부분이 많다. 이 책이 유용하다 하는 이유는 그런 부분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옳은 우리말 표현으로 옮겨적는 예시가 풍부한 점이다. 사실 기존의 비슷한 책에서도 이런 방식을 따른 책은 몇 권 있었으나 이 책만큼 풍부하지도 않거니와 왜 이렇게 바꿔써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준 책은 없었다. 이 말은 곧, 일본어 번역가를 목표로 삼은 이에게 최고의 실용서 역할을 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실전 연습은 그 과정에서 초보 번역가, 번역대학원생, 일반인, 작가가 실제로 번역한 글을 비교해 볼 수 있어서 번역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책은 참고문헌을 빼고 총 260페이지. 양이 너무 적다. 저자도 분명 분량면에서 아쉬웠으리라. 책을 다 읽고 나면 나처럼 '아쉽다, 이 사람이 쓴 논문을 찾아 읽어야겠구나'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을 교재로 "일한번역연습"이라는 대학 수업을 들었는데 근거로서 왜곡된 부분, 또는 근거가 부족한 설명이 교수님과 함께 검토하는 중에 몇 군데 드러났다. 그러나 일한번역가 지망생에게 이만한 실용서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저자의 멋진 번역투 잡기 활동을 기대한다.



가난뱅이의 역습

저자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출판사
이루 | 2009-04-0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자. 자유롭고 뻔뻔한 가난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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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하다. 이것이야말로 청량서적! 우선 지은이 약력부터 빵빵 터지는 이 책은 부자들에 대한 가난뱅이의 일침, 작가가 직접 저항한 투쟁기이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이건 소설책인가 싶다(참고로 실용서이다, 강력한 저자의 의지다). 당최 말도 안 되는 내용만 잔뜩 쓰여 있다. 이해할 수가 없어! 이게 가능해? 싶은 이야기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며 작가 본인의 체험담이다. 학교식당이 돈맛을 들이자 식당 앞에서 1000원짜리 카레를 팔며 저항하고, 대학이 야간부를 없에려고 들자 교섭담당 사무실 밖에서 구린내가 나는 생선을 구워 냄새로 아수라장을 만들어 투쟁하고, 기타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곳이 있으면 이 가난뱅이 단체가 출몰하여 노상에서 찌개를 끌여댄다. 그외에도 데모를 하며 경찰을 골탕먹이는 방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등 시쳇말로 '병신같지만 멋있어'

 

이 책은 다시 말하지만 소설책이 아니며 개그책도 아니라 당당히 실용서이다. 작가는 웃기려고 쓴 것도 아니며 노하우를 알려주려 쓴 것이다. 무슨 노하우? 우리 가난뱅이들이 부자와 대결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 체력을 단련하는 노하우! 단지 아끼고 살자는 것이 아니다. 부자에 저항해서 아껴라! 그리고 실천해! 이렇게 말하면 또 극우파 고엽제 할아버지들이 가스통들고 달려와서 '게으른 주제에 달라는 건 많지!'하며 딴죽을 걸지도. 멋도 모르는 소리다. 작가와 일행들이 얼마나 열심히 뛰는데. 즐겁고 제멋대로 살려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는 이야기다.

 

작가가 말했듯이 일본이고 우리고 직장만 잡으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짜 중산층이라고 부를 만한 집단은 몇 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하위층이며 빈곤층이다. 좀 어렵게 들어가서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 시설도 갖추지 못한 노동자 계급인데 어떻게 중산층이라 부를 수 있나? 계속 상위 1퍼센트들이 부익부하며 빈익빈하는 인구수는 늘어가는 신자유주의 세상. 이에 맞선 가난뱅이들의 궐기. 삼일 묵은 변비가 좌변기 바닥을 뚫고 나가는 듯한 통쾌함이 있다.

 

아쉬운 점은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예. 집회의 자유가 일본의 발톱만큼도 보장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 따라 했다간 나랏님들께 응징의 철방패질, 폭포 같은 살수차 물줄기에 고막파열 등의 부상이 뒤따르니, 책 내용중에서 한국공안경찰나리님들도 차마 어쩌지 못하는 약한 것부터 일단 시작하자.

 

더불어 번역에 김경원 번역가. 일단 서울대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아 이거 또 딱딱한 번역 난무하겠구만' 했는데 왠걸 이렇게 친숙하고 쏙쏙 들어오는 번역이 또 없다. 번역에 만점 드린다.



공학적 글쓰기

저자
김혜경 지음
출판사
생각의날개 | 2010-09-13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꽉 막힌 글문을 틔워주는 살아 있는 글쓰기 전략공학적 글쓰기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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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공계 학생들과 전공자들의 글쓰기 능력이 뒤떨어져 있다고 본다. 이는 맞는 말이다. 실제로 이공계에서 보고서 따위의 서류를 작성할 때 엉망인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오히려 문과 출신 학생을 채용하는 이공계 회사가 늘고 있다는 기사 또한 본 적이 있다. 이처럼 올바른 상호 대화(글을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도 이 대화에 포함된다 할 수 있다)가 중요시 되는 요즘. 이공계 전공자의 작문능력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나온 책이 공학적 글쓰기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 실패한 책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조건은 세 가지가 있다. 1. 합목적성 2. 가독성 3. 소설이라면 기승전결, 그 외의 장르라면 서본결론의 적절한 분배. 참으로 오랜만에 세 항목에서 모두 실패한 책을 만났다. 이제부터 왜 이런 강도 높은 비판을 던지는 지 설명하겠다.


우선 합목적성. 책 표지에서부터 이 책의 목적은 '글쓰기가 괴로운 사람들을 위한 실용 글쓰기의 모든 것'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전혀 해답이 되지 못하는 내용은 진작에 목적을 잃은 듯하다. 이 책은 '실용'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대부분의 주장이 이론에 입각했을 뿐이다. 실용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실었으면 내용도 예를 들어 실제 글쓰기 예를 보여주고 이부분을 이렇게 바꾸면 더 좋다든지, 여기는 이렇게 쓰는 게 더 낫다든지가 실릴 만도 한데 작가는 이론만 줄창 파들어가기에 바쁘다. 실제 텍스트 작성에 대한 팁보다는 '어떠어떠한 면에 어떠어떠한 점을 살리도록 마음에 새기고' 와 같은 붕뜬 이론만 실려 있다. 이건 실용이 아니다.

 

가독성은 그야말로 참상이다. 표지에 드러난 목적과 어긋나는 내용을 읽는 것 자체가 고난인데다가 작가의 썰풀이는 그야말로 고지식하다. 도대체 글쓰기를 도와준다는 책에서 '자연적 원인만으로 제한된다는 점이다. 이는 초자연 현상이라고 불리는 영역에 과학적 방법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과학의 타당한 주제가 되기 위해서는 초자연 현상이 자연적 원인으로 분석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라니, 놀리는 건가? 이 문단이 대체 공학적 글쓰기와 어떠한 관련이 있으며 관련이 있다손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머리속에 그려지지가 않는다. 이는 일례일 뿐이며 상당 부분이 이렇게 부유하는 이론중심 서술에 치우쳐 있다. 재밌는 점은 책의 202 쪽에 각가가 스스로 '원리중심의 이론 습득은 지양해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이다. 이럴 때 쓰라고 사자성어가 있다. "자가당착"

 

또한 이 책은 다른 글쓰기 책들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길게 연장하여 대략 300페이지를 채워넣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 내용이 공학적 글쓰기의 필요성, 혹은 당위성이다. 보통 실용 글쓰기 책에서 이런 부분은 아예 빼버리거나 챕터 하나의 분량을 줄까 말까이다. 대체 진심으로 글을 쓴 목적이 무엇이길래 이런 책이 나오는가?

 

종합하여 이 책은 'technical writing'이란 이론 자체를 소개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책일 뿐이다. 그 설명방법은 고지식하며, 목적으로는 책의 실질 내용과 상관 없는 실용, 살아 있는 글쓰기를 내세웠으니 집안으로 치면 삼대가 망하는 집안 수준의 책이다. 감히 말하길 이 책으로 글쓰기 실력을 신장해보려는 이공계 학생들, 꺼낸 지갑을 도로 집어 넣으시라. 책표지의 문구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꽉 막힌 글문을 틔워주는 살아 있는 글쓰기 전략' 아무리 출판도 장사라고는 하지만 '꽉 막힌 글문으로 읽기 어렵게 쓴 다 죽은 글쓰기 전략'이 백번 더 어울린다.

 



나도 번역 한번 해볼까?

저자
김우열 지음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 2008-07-08 출간
카테고리
외국어
책소개
시크릿 번역가 김우열이 시원스럽게 알려주는 번역가 입문 궁금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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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번역가라는 네이버 카페가 있다. 시크릿의 한국판 번역가 김우열이 관리하고 번역가 지망생들이 하나둘 모여 연습, 토론을 거듭하는 공간이다. 하나둘 하던 회원이 어느새 16800명을 넘겼다. 사회에서 번역가에 대한 관심이 커져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점점 커져가는 덩치. 나도 이 카페의 회원이며 한 때 줄기차게 활동하였다. 친분이라고까지 하기는 좀 그렇지만 리플과 방문회수 우수로 직접 김우열씨에게 '번역의 탄생'이란 책을 선물받기도. 한때는 번역가를 꿈꾸었고 지금도 관련계열에서 일하길 바라는 나로서는 너무 늦게 읽는 감이 있지만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도 하지 않던가. 싸구려 자기 합리화는 집어 치우고 책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책의 구성은 크게 이렇다. 질문 하나를 상정하고 이에 저자가 대답하는 식이다. 저자가 이 방식을 택함은 분명 노림수가 있을 터이다. 그리고 그 노림수는 바로 '번역가 지망생들의 고민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 사실 yes24를 기준으로 번역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약 3000권이 넘는 책들이 걸린다. ㅡ물론 번역과 딱히 관련 없는 책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ㅡ 그 책들은 대개 대학 강의와 닮아 있다. 대학 강의 하면 떠오르는 것? 그렇다, 일방성. 교수는 전달하고 학생은 받아 적는다. 물론 최근에는 많이 소통식이 채용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 방식이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등에 난 가려움을 긁어주지 못한다. 번역가란 직업을 갖는데 왕도란 없기 때문이며, 공무원 같이 시험이라는 직접고속도로가 나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 같은 경우 좋은 학원에서 좋은 선생님께 좋은 강의를 듣기만 하면 그리고 스스로 공부하고 시험에 붙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번역가

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걸까? 수수께끼의 공간에 놓인다. 그러니 지망생들은 기존의 번역관련 서적을 읽고 '아니 이런 거 말고 번역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 그걸 알려달라고 내가 가려운 부분은 거기가 아니야!' 하게 된다. 이에 베테랑 번역가 김우열이 효자손을 들고 왔다.

 

단점을 딱히 집을 데가 없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그것은 목적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전문 서적을 집필하는 저자들도 간간히 딴 얘기를 섞는 것을 보면 이 책 저자의 합목적성에 대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저자는 베테랑 번역가다. 매일 같이 글을 다루고 편집자와 공동 작업을 수차례 겪었을 것이며 더군다나 번역이라는, 글을 옳게 만드는 작업의 귀재이다. 어찌보면 일정 궤도에 오른 번역가가 집필한 책은 유명작가의 책만큼이나 신뢰할 수 있다고도 하겠다.

 

내용으로 들어가서도 만족스럽다. 무언가를 설명함에 있어서 예시를 드는 것은 효율 높은 방법이다. 가끔 여느 저자들은 이 예시에 무리수를 던진다. 정보를 전달하는 책임에도 이솝우화식 예시를 던지는 등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게 없다. 모든 면에서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다. 훌륭한 다이어트는 비단 몸무게만 줄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근육이 잡힌 몸을 의미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다이어트 되어있고 정보는 정보대로 살아 있다. 그래도 딱히 놀랍지 않은 건, 번역가 김우열이 지은 책이니까. 컨텐츠, 디자인, 합목적성 두루 갖춘 책이다. 그래도 꼭 딴죽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들을 위해 단점 한 가지! 내용중에 중요하기에 하일라이트를 준 글귀의 색깔을 연한 녹색으로 처리했다는 점. 잘 안 보인다. 하일라이트가 본문보다 더 잘 안 보이는 색이라니 이런 낭패가?!

 

 



컨설턴트

저자
임성순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0-04-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완전범죄를 위한 시나리오를 쓰는 그 남자, 컨설턴트!2010년 ...
가격비교

우리는 나도 모르게 살인을 하며 살고 있다. 무슨 범국민적 살인 모함이냐, 무고죄로 역신고하겠다 나오시면 곤란하니 일단 들어보시라. 개인의 한 가지 행동은 여러 과정이 겹치고 엮인 결과인 동시에 여러 결과를 낳는 원인이기도 하다. 내가 마시는 음료수 한 캔 때문에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 한 제3세계 어느 국가의 아이들은 음료수 공장에서 노동착취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또는 내 행동이 어느 마을 하나를 불바다에 휩싸이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눈치 챌 수 없다. 더욱 끔찍한 것은 혹여 우리가 눈치 채더라도 '그래서 뭐 어쩌라고, 어쩔 수 없잖아?' 하는 합리화이다. 기껏 연예인이나 부자들이 난민지역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더라도 그 지역이 아수라장이 된 배경에는 그들이 먹고 마시고 즐긴 행위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뒤틀린 세계에서 끊임없이 합리화를 하며 산다.

 

책은 살인 시나리오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주인공이 직접 살인을 하지는 않지만 그의 시나리오대로 회사는 헛점없는 완벽살인을 이뤄낸다. 처음에는 물론 그저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줄만 알았던 주인공. 하지만 회사가 제공한 캐릭터의 정보는 실제에 바탕을 두었으며 그 정보를 엮어 만든 소설이 실제로 실행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미약한 발버둥을 쳐보기도 하지만 결국 합리화라는 카드를 꺼내드는데...

 

글의 매력이 상당하다. 플롯이 상당히 짜임새 있기에 읽다보면 다음 내용 나아가서는 결말이 어떻게 될까 굼금해지고 책을 덮기 어렵다. 자세한 묘사와 설명들도 뛰어나다. 매 살인사건을 다룰 때마다 대충 넘어가는 일 없이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다. 덤으로 실린 암살단 정보, 스탈린 관련 역사 지식, 메탈리카의 음악 등 풍부한 인문학 지식들이 지루하지 않게 하며 약 300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사회비판을 기본으로한 메시지의 통일성도 분명하다.

 

아쉬운 점이라면 메니저와 결혼함으로써 주인공은 결국 끝까지 합리화를 고수했다는 점이다. 결국 이 세상을 지배하는 부도덕함과 이에 거스를 수 없다는 허무함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기껏 콩고에 고릴라를 보러 가는 것보다는 더 대담한 모험이 하나라도 섞여있었다면 읽는 이는 잠시나마 통쾌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소설의 말미에 가서 '어쩔 수 없다'는 문장을 남발한다. 읽는 이들이 그동안 읽어온 내용을 책을 덮을 때마다 잊는 병이라도 걸리지 않았다면 '합리화'를 주로 다루고 있다는 걸 안다. 구태여 직설법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었을까? 상황이나 은유를 활용하는 편이 더 강렬하게 남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작품 분위기가 시종 진지하다. 그런데 가끔 섞여나오는 시쳇말로 '개드립' 말장난은 역효과.



사진이란 무엇인가

저자
최민식 지음
출판사
현문서가 | 2005-06-20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이론서. 50여 년 동안 사진이라는 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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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식 소모성 짙은 무가치한 살롱사진에 반하는 진짜 사진에 대하여, 경력 50년 이상의 전문 사진작가 최민식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최민식이 고집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사진은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 작가의 사상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리얼리즘을 살려야 한다 등이 그것이다. 또한 빈곤층을 대상으로 해 현대사회의 왜곡을 고발하는 저널리즘조차 빼놓지 않았다.

 

작가도 말했지만 이 책은 흔한 '사진 기술 계발책'이 아니다. 그야말로 훌륭한 셔터짓을 위한 임전태세를 벼리도록, 또 가치가 있는 사진을 찍도록 도와주는 책에 가깝다. 굳이 정의하자면 사진작가 윤리 계발서라 부르고 싶다. 

 

유명 사진작가들의 대표 작품을 최민식만의 해설로 풀어 내어준 부분도 흥미롭다. 다만 아무래도 사진 그 자체에 중점을 책이기에 텍스트는 부족한 편이고 반복되는 같은 의미의 문장들이 많다는 점은 아쉽다. 사진작가에게 그런 집필면까지 꼼꼼하길 바란다는 점이 너무 억지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