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저자
박민규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3-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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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유명한 박민규. 근데 책을 저자의 유명세로 읽나? 분명 그런 사람도 있지만 나는 아니어서 이번에 처음 들어본 박민규. 형, 아저씨, 아무튼 박민규 씨. 이 사람 피곤한 사람이다.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도대체가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 책을 빌려준 김모양이 "아니라구요!"를 연발해도 난 죽어라고 "이건 판타지잖아."하고 되연발을 했다. 종잡을 수 없다. 냉장고 속에 중국이 들어가지를 않나, 오리배가 날지 않나, 헐크 호건에게 헤드락을 걸려 공중부양을 하지 않나그럼에도 요 요상한 이야기는 빨판상어의 빨판같은 흡입력을 자랑한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게 문제다. 적어도 나는 감성보단 이성을 믿고 사는 사람인데 이 해괴망측함에 끌리다니.

 

굳이 말하자면 특이한 문체를 들 수 있다. 내용도 종잡을 수 없지만 문체 또한 그렇다. 문단의 나눔 기준이 무작위이다. 막 이야기를 늘어 놓다가 ㅡ심지어는 문장도 채 마치지 않은 채ㅡ뚝 두 줄 끊어버리고 새로 이어나가는 문장. 고지식한 글쓰기 강사들은 겨울날 원숭이들이 목욕하러 가는 일본 노천 온천처럼 부글부글 속이 끓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런 현실에서 환상으로, 또 그 현실에서 왜 하필 그 환상으로 이어지는 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무작위로 보이기까지 한다. 정말 책 마지막 부분의 서평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몸이 백골진토될 때까지 이해하지 못 했으리라. 실로 짜증나리만큼 참신하고, 그동안의 출판 경향으로 비추어 문학동네에서 박민규를 잡은 것 또한 신선하고, 이해하고 나면ㅡ물론 서평의 도움을 받아서ㅡ 그 깊이에 또한 놀라고, 박민규가 가진 마인드 맵의 넓이에 놀랐으니 그냥 놀라운 책이라 정의하고 끝내련다. 더 파고들려면 피곤해질 거 같다. 


당부하는데 꼭 다읽고 서평까지 읽으시길. 물론 작가는 그냥 카스테라 한 조각 주듯 가볍게 독자에게 선물한 책이지만 또 그게 그런 게 아니잖습니까? 에이 기왕이면.



통조림공장 골목

저자
존 스타인벡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8-04-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존 스타인벡이 창조한 사랑스런 인물들의 유쾌하고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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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읽은 '달콤한 목요일'이 이 책 후속작이기에 안 읽고는 배길 수 없었다. 달콤한 목요일이 닥을 둘러싼 로맨스에 가깝다면 이 책은 마을 그 자체를 담았다고 본다. 1940년 대 미국 어느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그 마을 사람들의 삶을 다루었다. 그들의 삶은 삭막해보인다. 살인마가 칼을 휘두르고 다들 총을 쏴대는 그런 정이 없는 삭막함이라기보다 아쉬움이 주는 삭막함이랄까? 남이 뱉어낸 무심한 한 마디에 자살을 택하는 그런 꺼림칙한 아쉬움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는 곧 당시 시대상을 나타내는 것일 테다. 이렇게 삭막한 이들이라도 생물표본 만들기를 직업으로 삼는 닥에게는 거짐 종교와도 같은 경외심을 품는다. 책속 인물들은 다른 인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험담을 섞는데 닥에게 만은 떠받드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이 닥을 기쁘게 하려 이벤트를 준비한다. '삭막한 사람들이 준비하는 이벤트'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눈을 내용에서 책 그 자체로 돌려보면 아쉬움이 많다. 우선 번역과 편집에서 오는 아쉬움이다. 역자가 원문을 너무 존중한 나머지 직역에 가까운 번역을 했고 이는 곧 가독성이 뚝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읽는 내내 친숙하지 않은 문장들에 버거웠다. 이것은 출판사 편집부에서 잡아 줄 문제인데 물론 박봉에 야간작업하시며 피땀흘려 내신 책이시겠지만 부족하다. 원문이 지나치게 만연체로 가서 읽는 호흡이 가빨라 지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독신주의자를 독선주의자로 오타 낸 부분도 있다. 크게 봐서 재밌는 이야기를 가지고 한국판으로 옮기다가 그 재미를 잃었다고 본다.

 

 



공무도하

저자
김훈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9-10-0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기자 김훈의 눈으로 들여다본 세상 이야기!칼의 노래, 남한산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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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냅다 

퀘퀘한 담배연기와도 같은 단어. 그 단어들이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이고 다시 뱉어내는 빠르기로 스쳐간다. 이 말라붙은 간결체 문장들이 마치 사진 한 장을 보듯 객관성있게 정보를 전달한다. 사건이 흘러가는 모습과 풍경을 말이다. 지은이가 기자 출신임을 다시금 되돌아본다. 또한 정보전달에 충실하느라 묵혀두었던 감정들이 습기를 품고 만연체 문장에서 뿜어져 나온다. 만연체 문장을 읽어 나갈 때면 출신이 어찌되었든 역시나 소설이며 소설가의 글이다 싶다.

 

 이 책은 어둡다

많은 죽음이 나오는데 모두 자기 의지도 아니며 자기 잘못도 아닌 죽음. 선을 좇다가 맞은 희생이 아닌 악을 좇는 이들에게 당한 개죽음에 가깝다. 이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다면 차라리 스스로 눈을 가리어 어둠 속에 갇혀 버리고 싶을 만큼 적막이 만들어낸 끌어당김을 느낀다. 딱히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지도 않았다. 그저 사건들이 풀어져가는 과정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뼈에 사무치는 깊은 어두움이 있다. 이는 때때로 직접 이빨을 드러낸 악인을 묘사하는 글보다 더 섬뜩하게 다가오는데 미움보다 무관심이 더 무섭다는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메마름

이렇게 메마른 아수라장을 무릎과 팔꿈치로 땅을 짚으며 기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삶들을 다루면서도 감정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은 어찌 보면 너무하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감정의 동물인 인간에게서 감정을 제쳐놓고 보려할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짜 모습'은 치졸하고 애처롭고 당장 시야에서 내던져버리고 싶은 모습일 테다. 우리가 감정을 제쳐놓고 사람과 사람이 엮여사는 사회를 볼 때 드라나는 메마름, 아니 우리가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미 메말라 있는 그곳. 사람과 사람이 만든 사회가 아닌 욕심과 욕심 사이에서 힘있는 욕심이 차지해버린 사회. 텁텁함을 느낀다. 김훈의 글이 좋으나 그 좋음이 웃음을 자아내는 좋음은 아니다.

 



포르토벨로의 마녀

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7-10-1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내 안에 숨겨진 마녀를 일깨우라! 연금술사 작가, 코엘료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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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1) 작가는 항상 안경을 걸치고, 절대 머리는 빗는 법이 없다. 늘 화를 내거나 우울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는 술집에서 역시나 헝컬어진 머리칼에 안경을 걸친 다른 작가들과 격론을 벌이는 데 일생을 바친다. 작가는 매우 '심오한'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제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치며, 가장 최근에 출간된 자신의 책을 몹시도 혐오한다.

2) 작가는 자기 세대로부터 절대 이해받아서는 안 될 책임과 이무를 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따분한 시대에 태어났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동시대인들에게서 이해받는 건 천재로 간주될 기회를 송두리째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확신한다. 작가는 자신이 쓴 문장을 끊임없이 다듬고 수정한다.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산천 개 내외인데, 진정한 작가는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제외하고도 사전에는 아직 십팔만 구천 개의 단어들이 남아 있는데다,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잖은가.

3) 작가의 말을 이해하는 건 동료 작가들뿐이다.그럼에도 작가는 남몰래 동료를 경멸한다. 그들은 결국 문학사에 수세기 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는 영광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들이니까. 작가는 '가장 난해한 책'이라는 영예를 안기 위해 동료들과 경쟁한다. 이 싸움에서 승자는 가장 읽기 어려운 책을 쓰는데 성공한 사람이다.

4) 작가라는 사람은 기호학, 인식론, 신구체주의 같은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명사에 조예가 깊다. 누군가에게 겁을 주고 싶으면 이런 말을 들먹이면 된다. "아인슈타인은 바보야." 혹은 "톨스토이는 부르주아의 광대였어".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아니꼬워하면서도, 그 자리를 뜨자마자 상대성이론은 엉터리이고 톨스토이는 러시아 귀족사회의 옹호자였다고 떠벌리게 될 것이다.

5) 작가는 여자를 유혹하고 싶을 때마다 냅킨에 시 한 편을 써서 건네며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작가입니다." 언제나 통하는 방법이다.

6) 작가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학비평을 한다. 그는 비평가로서 동료들의 작품에 후한 점수를 준다. 그러나 그가 쓴 평론은 반은 외국 작가의 인용구로, 나머지 반은 '인식론적 단락' 이니 '융화된 2차원적 삶의 비전' 같은 표현 따위로 점철되어 있다.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감탄할 것이다. '참 똑똑한 사람이야!' 하지만 막상 책을 사기는 꺼린다. 인식론적 단락 앞에서 쩔쩔매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7) 작가는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늘 남들이 듣도 보도 못한 제목을 댄다.

8) 작가와 그 동료들에게 한결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책은 세상에 단 한 권뿐이다.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이 작품을 깎아내리는 작가는 없다. 하지만 책 내용을 물으면 횡설수설한다. 정말로 그걸 읽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 파울로 코엘료 "흐르는 강물처럼"의 프롤로그에서



포르토벨로의 마녀에는 수많은 '벗어남'이 담겨 있다. 

첫째로, 주제다. 그동안 '신'에 담겨진 성별은 남성성이었다. 가부장적 전통을 계승한 이들은 전능한 지배권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러나 포르토벨로의 마녀에 나오는 신은 여성이다. 그리스 신화 따위에서 제우스의 성놀이 상대일 뿐이고 서로 질투싸움이나 하던 아낙들, 철저한 남성 중심 사고가 빚어낸 왜곡의 피해자들, 그녀들이 이제 메인무대로 오른다. 또한 기존의 남성신 중심 스토리가 권위적이며 절대적인 심상을 드러냈다면, 대지의 여신 가이아로 대변되는 여성신의 이미지는 곧 모두의 어미, 끌어안고 다독이며 격려하는 신으로 드러난다.

둘째의 벗어남은 바로 종교이다. 한동안 '덴 브라운' 소설을 위시로 하여 반기독교 픽션, 팩션이 쏟아져 나왔다. 허나 이 또한 최근의 일이고 전통적으로 종교, 특히 크리스트교는 긍정적인 묘사되었다. 다시 말해 종교는 숭배할 대상이었지 비판의 대상은 아니었다. 여기서 코엘료는 다른 길을 걷는다. 아테나를 모함하고 소송까지 아끼지 않는 인물로 꽉막힌 목사를 설정하는 것 이를 통해 기존 종교들이 갖은 폐쇄성을 비판하는 노림수를 성실히 수행한다. 더불어 미디어도 아테나와 그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왜곡하고 과장함으로써 이 꽉막힌 목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셋째로, '스승 패턴'을 때려부수는 시각이다. 기존 소설 플롯의 스승은 가르치는 자, 제자는 배우는 자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를 해체한다. 코엘료는 스승과 제자를 모두 배우는 자로 설정한다. 동양의 청출어람과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권위, 특히 교육자와 피교육자 간의 역사 깊은 갑을 관계. 이 틀을 파울로 코엘료는 보란 듯이 벗어난다.

마지막으로, 화자 시점이다. 이 책은 마치 다큐멘터리 한 편을 글로 옮겼으면 이랬으리라 싶을 만큼 특이한 시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아테나를 둘러싼 각 인물들이 독백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 이런 식의 텍스트를 접하면 독자는 어떤 효과를 누릴 수 있을까. 우선 객관적인 사실관계가 큰 틀로 잡힌다. 그러나 개인의 동일한 사건에 대한 묘사는 제가끔 다를 수 있다. 이 점에서 코엘료는 "손 안 대고 코 풀기" 방법을 동원한다. 기존의 전지적 시점이나 1인칭 시점 소설은 어떤 형식으로든 작가가 개입하여 각 인물의 성격을 묘사해야 한다. 전지적 시점에서는 직접적으로, 1인칭 시점에서는 주인공의 감상이나 대화체로써. 그러나 인터뷰 형식을 차용하면 이 캐릭터 파악 작업이 독자의 손으로 넘어온다. 내려놓기와 벗어나기는 이음유의어이다.

어느 방면에서든 "발군"이라는 호칭을 수식어로 받는 전문가는 제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파울로 코엘료 또한 이에 속하는 저자이다. 그리고 이는 기존 형식을 벗어나 독자와의 친근감을 형성, 적절한 고발성을 띠며 건네주는 작은 속 시원함으로 전해진다. 파울로 코엘료의 벗어남은(脫) 독자들을 끌어들이는(集) 아이러니한 벗어남이다.

 


달콤한 목요일

저자
존 스타인벡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3-0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존 스타인벡이 창조한 사랑스런 인물들의 유쾌하고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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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수요일, 그리고 휴일이 기대되는 금요일, 그 사이에 있는 달콤한 목요일.

한 바닷가 마을에서 일어나는 닥(주인공) 행복하게 만들기. 한 땐 그 마을에서 반쯤 살아있는 종교라고까지 해도 될 만큼 모든 면에서 신뢰받던 닥. 이 사람이 전쟁이 끝난 뒤에 달라져 돌아왔다. 예전 같지 않게 삶을 고통스럽게 본다. 이를 참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의 리더이자 쉼터인 닥을 다시 행복하게 하기 위해 꿍꿍이를 꾀하는데.

이들에게 수요일까지가 힘들어하던 닥을 상징한다면 목요일은 닥을 행복하게 만들기위한 '달콤한' 계획을 직접 실행하는 날. 정작 당사자인 닥은 그 과정을 생각지도 못했고 억지로 당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남이 날 행복하게 하기 위해 날 속이는 꿍꿍이. 기쁜걸까? 게림칙한걸까? 이 계획이 똑딱 들어맞을까 아니면 폭삭 무너질까? 그래서 닥이 다시 행복해질까 여전히 불행할까? 물음이 끊임없다.

읽어가면 점점 더 뒷이야기가 궁금해 참을 수 없는 재미난 이야기였다. 그리고 겨울날 몇 달 만에 만난 친구들과 따듯한 정종을 마시고 헤어진 후 택시안에서 다시 그 술자리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따듯함. 그런 게 있던 책이다. 달콤한 목요일은 다분히 스타인벡 답지 않은 책이라 한다. 다른 작품들은 좀 더 무겁거나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그런 책들이란다. 좋습니다, 다음에는 다른 분위기로 다시 뵙지요.

 


세계의 끝 여자친구

저자
김연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7-2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이상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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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바깥 얘기

요즘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닌 걸 하나 들자면 포장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과대포장. 마트에 가서 가위나, 자동차 전구나 뭐 그런 것들을 살 때면 아주 딱딱한 투명 플라스틱 포장과 만난다. 이게 보기에는 참 좋아보여도 내용물을 손에 쥐기까지는 참말로 불편하기 짝기 없다. 때때론 가위 포장을 뜯으려고 가위로 포장을 잘라야 하는, 누굴 위해 누가 널 뜯고 있는지 모르겠다 싶은 씁쓸함마저 느낀다.

책 속에선?

내게 이 책은 과대포장된 사탕과 같았다. 그 이야기가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산 역사라고 할지라도 그 고귀한 이야기를 세상과 잇는 단 하나뿐인 수단을 지나치게 다루면 읽는 사람은 고귀함을 느끼기 전에 지친다. 수식에 지치고 포장에 지쳐서.

단편들로만 이루어진 책이다보니 긴 플롯이 나오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본다. 그래도 짧아도 너무 짧다. 마지막 달로 간 코미디언이 그나마 페이지를 많이 잡아먹어서 흐름이 있고 인물이 이동하는 장면도 많았다. 하지만 그 앞에 나온 단편들은 정말 플롯이 짧다. 플롯보다는 인물이 생각하는 세계, 철학, 자기만의 시각을 나타내는 일종의 수식이 페이지를 많이 차지하다보니 당연한 이야기다. 그 수식들은 플롯과는 크게 상관없이 툭툭 튀어나왔고 따로 둥둥 떠다니는 비눗방울 같이 어색하기만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