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2-06-2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소소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하루키의 에세이!세계적인 작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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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 사람들만 그런지 몰라도,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재미있지 않아?"라고 물으면 다들 목을 시소 태우며 "응, 맞아!"라고 대답하곤 한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에세이가 더 재미있는 이유. 상실의 시대나 1Q84, 해변의 카프카 같이 해설이 필요한 작품과 대조되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해답을 에세이가 실린 곳에서 찾는다. <앙앙>이라니. 일본 잡지 중에서도 연예, 예능을 주로 다루는 월간지이다. 아무리 편집부가 "무라카미 글이면 무엇이든 좋다!"라고 결정했다손 치더라도 어느 정도의 방향성이 같지 않다면 싣지 않을 터. 애당초 하루키의 에세이 몇 편을 보고 이거라면 우리와 맞다 싶어 섭외했을 가능성이 더 크겠다. 그러니까 연예지에 어울릴 만한 에세이란 말이고 그 에세이를 은 것이 <무라카미 라디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이다. 즉, 연예가십지를 재밌게 읽는 독자라면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도 빠져들 유전자를 가진다는 말. 그리고 연예지 독자는ㅡ비록 구매형 독자는 아니더라도ㅡ 소설 독자보다 월등히 많을 것이다. 동류의 잡지들이 미용실만 가도 넘치니까.

이렇게 확고한 지지기반을 갖는 저자의 책을 발행할 기회, 어느 출판사나 고대하는 일일 터다. 그 기회가 비채라는 출판사에 돌아갔다. 그렇다면 비채는 과연 어떻게 빚어냈을까. 우선 전작인 <무라카미 라디오>를 만들어낸 무라카미 하루키 글, 오하시 아유미 일러스트 콤비를 유지했다. 그 어느 출판사라도 깰 수 없는 배트맨&로빈의 관계였을 것이다, 혹은 보니&클라이드거나. 마찬가지 번역가 권남>희 씨의 번역도 변함이 없다. 이 부분이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옛 TV판 더빙영화들을 보면 특정 배우의 목소리는 특정 성우가 전담한다. 다른 영화로 바뀌어도 그 배우의 더빙 목소리는 늘 그 성우이다. 늘 아쉬웠다. 만약에 저 목소리를 다른 성우가 했더라면 하는 기대. 그 아쉬움이 고대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와 권남희 씨에 겹친다. 권남희 씨의 번역이 거칠거나 부족하거나 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다른 스타일의 번역으로 읽고 싶다는 느낌에 가깝다.

때문에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무라카미 라디오>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딱히 전작에 밀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뛰어넘을 요소도 없다. 물론 하루키의 독특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작과 동일하게 신선하다. 그러나 포맷의 신선함이 없다. 내용상에서 동일한 신선함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싶지만 문제는 <무라카미 라디오>는 내용은 물론 포맷도 신선했다는 데에 있다. 어려운 일이다. 전작의 성공을 답습하느냐, 위험하지만 변화를 주느냐. 변화를 주었다면 준 대로 나름 흠 잡을 데가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답습한 만큼 한 대로 흠이 드러날 것이고. 어디까지나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이고, 해야 하는 지적이라 생각한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가 가벼운 에세이로서 가볍지만 때로는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찾는 독자에게 적합한 책임은 변함이 없다. 그 재미도 변함은 없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저자
이진경 지음
출판사
그린비(그린비라이프) | 2005-02-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근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철학사상을 개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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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철학의 경계들

 

책의 부제와 같이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근대철학의 시작점인 데카르트에서 근대를 탈피한 현대철학까지의 계보를 다룬다. 흔히들 서양철학은 모두 그 철학의 전(前) 철학에 대한 주석이다란 말을 쓰듯이 서양철학을 바로 이해하는 데에는 이러한 계보도가 필요하다. 이를 집대성 한 버드런트 러셀의 [서양철학사]가 때문에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또한 일종의 선형을 이룬 계보도를 그렸으며 그 대상은 데카르트부터 들뢰즈까지이다.

 

우선 데카르트부터 시작한 근대철학은 과학의 강조, 지적 무지함을 가르침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계몽주의를 아우른 '인간' 주체철학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로크로 내려와 경험주의로 발전하고 유명론이 대두된다. 흄은 이러한 유명론에 회의를 가하며 결국은 진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결론, 즉 근대철학을 해체한다.


이 때 등장한 칸트. 칸트의 중요성은 이렇게 붕괴의 위기를 맞은 근대철학을 재건했다는 데 있다. 그 방법론으로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주장 즉, 선험적 주체를 강조한다. 이는 곧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됨을 의미하고 그곳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다. 이 주체와 객체의 동일화는 헤겔로 이어저 절대자, 혹은 절대정신으로 불리고 이 때 근대철학은 정점을 누린다.


정점에 안착한 것은 추락하는 법. 이에 맑스는 문제는 '실천'이라는 실천철학을 강조하며 근대를 해체한다. 프로이트는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신분석학을 통해 해체하며 니체는 근대철학이 말하는 진리를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며 이러한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를 찾는 계보학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권력의지'가 그 원인이었음을 주장한다. 이 권력의지에 의해 다시금 근대철학은 해체과정을 밟는다.


근대를 통틀어 강조되었던 주체의 중요성은 현대철학으로 들어서며 지식에 자리를 양보한다. 다시 말해 근대철학에서는 주체가 곧 효과를 야기하는 근원이었다면 현대에 들어서서는 지식이 이를 대체한다. 또한 현대철학은 불변함, 항속성, 구조를 강조하는 레비-스트로스, 라캉, 알튀세르 분파와 차이와 특이성을 강조하는 푸코, 들뢰즈, 가타리 분파로 나뉜다.

 

위의 문단은 이 책의 결론에 종합적으로 정리된 내용이다. 앞뒤 떼어놓고 말한다면 이 결론부분만 읽어도 이 책이 목표했던 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허무함이 남긴 한다. 그러나 요약은 어디까지나 요약일 뿐. 각 철학자가 주장했던 고유의 철학을 충분히 흡수하려면 역시 본문을 정독해야 한다. 그러니까 결론을 먼저 가이드라인으로 읽고 본문으로 돌아가는 것도 이 책을 탐독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할 수 있겠다.


또한 번역서가 아닌 한국어를 구사하는 필자가 집필했다는 점에서 가독성이 상당히 좋다. 적절한 삽화와 그 삽화와 연관된 필자의 문제의식 제기가 절묘한 점도 칭찬한다. 여러 면에서 볼 때 철학 초보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면이 많지만 철학 중수에게는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다.



복수가 이렇게 쉬울 리 없어

저자
조이 슬링어 지음
출판사
작가정신 | 2010-04-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아내의 복수를 결심한 사나이 중의 사나이, 여든한 살의 밸런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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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80대 노인의 살인대작전을


밸런타인의 아내는 망나니 셋에게 살해당한다. 이에 평소에 품고 있던 번지점프에 대한 착상에서 시작하여 밸런타인은 멋들어진 복수 살인극을 획책한다. 뛰기는커녕 걷기도 벅찬 80대 노인의 살인계획의 시작이다. 


개인적 복수로 시작한 이야기는 밸런타인이 수도원이라 불리는 양로원에 들어가면서 조직화된다. 양로원에 속한 게스트들의 소모임은 사회를 뒤흔들 만한 살인 조직으로 발전한다. 현역시절의 경험을 살려 노인들은 시계 속 톱니바퀴처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개중에는 무려 국제적인 허위거래를 성사시켜(자기네들의 거처인 수도원을 허위매물로 판다) 자금을 대는 노인까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최고이자 비참한 장점은 바로 옅은 존재감이다. 우리는 흔히 존재감이 옅고 눈에 띠지 않는 사람을 비꼬아 공기 같다고 한다. 그야말로 공기 그 자체인 노인 살인단. 그 공기가 살인이란 목적을 가졌을 때 공기는 독가스로 변한다. 보롭스카라는 예순이 넘은 형사가 나타나기까지는. 심지어 현장에 있었더라도 다들 저 노인이 설마... 라며 의심하지 않는다. 슬프고도 효율적인 이 노인들의 장점은 어쩌면 작가가 가장 드러내고 싶었던 포인트일 터이다.


 여든 노인과 예순 형사의 날카로운 심리전, 국제 거래와 최첨단 무기 활용까지 예상을 뒤엎는 노인들의 광범위한 능력, 수도원 내의 의사결정구조와 내분. 그 어느 것 하나 빼 놓을 것 없이 블랙코미디로써 충분한 조건이다.


허나 아쉬운 점은 ㅡ이런 류의 번역서를 읽으며 매번 느끼지만ㅡ 역자의 말을 읽으며 와 닿는다. 역자의 풀이로만 보면 이만치 이해가 잘 될 수도 없다. 그러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시금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늪에 빠진다. 블랙코미디를 블랙코미디로 즐기기엔 우리말과 영어의 구조가 판이하게 다르다. 이 책 또한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충분히 즐기기엔 직역이 많다. 독자가 책의 재미를 그대로 느끼게 하는 방법은 원문에 충실하기만 있는 게 아니다. 센스 있고 적절한 각색이 외국어 독자에겐 필요하다. 비단 이 책만이 아니라 다른 번역서들에서도 편집부와 역자 모두가 고려해줬으면 하는 부분이다. 분명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보이는데 투명한 포장지만 핥아야 하는 기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