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9-12-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세기 최고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을 만나다! 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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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농담으로 만났던 작가인 밀란 쿤데라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명불허전일지
빈수레가 요란할지, 읽어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유명세다.

 

시작부터 작가는 이분법, 혹은 건축저술가 임석재가 자주 사용하는 쌍개념을 들고 나온다. 가벼움과 무거움. 온 세상을 이 두 개념으로 구분짓고 무엇이 참인가를 네 인물의 삶을 빌어 추적해 나간다. 가벼움을 대표하는 남자 토마시, 여자 사비나. 무거움을 대표하는 여자 테레자, 남자 프란츠 이 네 남녀의 얼키고 설킨 이야기가 구소련의 체코 침략을 배경으로 펼쳐친다.

 

두 번째 문단에 쓴 '온 세상'을 다시 언급하고 싶다. 작가는 이 책에 총력을 기울인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만큼 소재의 범위가 너무나도 폭넓다. 시대 배경으로 쓰인 소련과 체코, 그리고 공산주의와 비공산주의, 남과 여 등 대립되는 쌍개념들이 무수히도 많이 등장한다. 읽으며 어느 것이 가벼움이고 어느 것이 무거움을 상징하는지, 또한 작가는 그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지 파악하는 게 꽤 고되다.

 

또한 썰풀이 방식도 상당히 특이하다. 작가는 3인칭 전지적작가 시점을 사용한다. 한데 마치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 같이 독자의 바로 옆에 있는 듯한 착각, 소설 내에 인물로 개입해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 기존 소설들처럼 플롯전개에 의존한 게 아니라 철저히 지금 그 인물이 마음속 감정을 서술한다. 플롯은 소설의 뼈대인데 이 뼈대가 챕터마다 연결성이 부족하고 드문드문 이빨 빠진 느낌이다. 감정위주로 글이 흘러가다보니 읽는이 입장에서는 스토리를 따라 글에 하나되어 흘러간다는 느낌은 받기 힘들다.

 

이야기는 무덤덤한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결국 소설 내내 다룬 두 개념의 저울질은 해를 구하지 못하고 마무리된다. 결국 답은 없고 무거우나 가벼우나 행복하지 못하는 걸까? 지인인 某교수는 프란츠와 사비나의 결말로써 토마시와 테레자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는, 결국 무거움이 옳다는 것을 작가가 역설했다고 풀이했는데, 조금 반문이 든다. 그렇다면 굳이 토마시와 테레자를 죽이는 시나리오로 쓸 필요가 있었을까. 결국 결론은 보류다. 보류, 밀란 쿤데라가 살아온 삶을 생각해보면 이런 결말이 나올 만도 하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저자
최진영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0-07-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름조차 행방불명된 그 소녀의 지독한 성장기!제15회 한겨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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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면 참 할말이 많으나 정작 입을 열면 말이 안 나오는 책이다. 암울함의 궁극체. 이 책은 사람 이야기를 담았지만 사실 귀신의 이야기이다.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귀신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귀신 중에서 소위말하는 끝판왕, 궁극체가 심지어 이름조차 없는 이 소녀이다.

 

소녀는 진짜를 찾아 세상을 방황한다. 마찬가지로 소녀가 진짜임을 인식한 진짜들만 소녀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들은 가짜가 되어간다. 그들이 가짜가 됨과 동시에 소녀의 짦은 머뭄도 끝이나고 다시 방황하게 된다. 진짜를 향한 열망이 아닌 고집, 그것이 소녀의 마지막 존재 이유.

 

작가의 날카로운 눈매가 돋보인다. 세상이 버린 사람들의 생활상을 세세하게 하지만 과장 없이 그려내는 것이 그렇다. 뛰어난 관찰력이며 평소에 그들에게 관심이 없던이가 쓱쓱 갈겨댄 글과는 차별화되는 점이다. 책의 분위기 답게 간결건조체를 적극 활용한 점도 장점으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소녀의 생각들을 기술함에 있어 적절치 않은 문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성인을 대상으로한 글이지만 아직 고등학생도 되지 않은 소녀 1인칭의 시점에서 이러한 세상풍파 다 겪고 먹물빨 좀 받은 어휘를 구사함은 석연치 않다. 작가가 의도하는 컨텐츠를 확실히 살리느라 컨텐츠를 감싼 구조에는 소홀해진 것이 아닐까.

 

이 책을 현대 사회의 양극화 부조리, 음지 고발 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보다는 소녀 내적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기에. 하지만 책 전체를 휘감는 케케묵은 곰팡이 냄새, 폭발 직전의 냄비같은 그 무언가, 한없이 어둠으로 빨아들이는 느낌은 누가 어떻게 해석하든 전해져 올 것이다.

 

최진영은 분명 살아 있다 못해 폭발하는 작가다. 하지만 그 폭발의 화염은 붉지 않다. 글에서 黑炎이 뚝뚝 떨어진다.

 



남쪽으로 튀어. 1

저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06-07-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현대인들에게 통쾌하고도 유쾌한 처방전을 제시해준 공중그네,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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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과격파 운동권 출신. 운동권 은퇴(?) 후 놈팽이 아버지로 돌아오긴 했지만 여전히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또다시 사건에 말려들자 온가족은 오키나와로 탈출을 시도하는데...소설은 파란만장한 가족의 둘 째 아이, 지로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의 첫 권은 초등학교 6학년생인 지로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때문에 그 시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 사춘기의 복잡미묘함, 유년문화가 뿜어대는 그리움 등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도드라지는 점은 그 어린시절에도 힘의 다툼이 있고 약육강식에 지배당함을 놓지지 않고 잡아낸 부분이다. 크고 작은 초등학생들 사이의 사건으로 명랑함을 더해가지만 사회문제를 등한시하지 않은 작가의 눈초리가 빛난다. 그리고 이는 소설 전체의 흐름과도 상통한다.

 

두 번째 권은 오키나와로 이주한 이후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탈출지에서 조차 안빈낙도한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고 또다시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는 무정부주의자 가족. 자본과 시스템이 엄습하는 이 땅에서 과연 이 가족이 갈 곳은 어디인가?

 

이라부 시리즈로 익숙한 오쿠다 히데오의 진면목을 발휘한 작품이다. 이라부 시리즈에서도 그랬듯 오쿠다 히데오는 절대 사회현상, 사회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글이 딱딱하지 않은 것은 그의 명랑 발랄한 문체에 있다. 이 작품만 해도 그렇다. 2권의 중반부 본격 갈등이 고조되는 부분에서

경찰, 개발업자, 지역주민, 심지어 외국인까지가 난장판 갈등을 빚는데도 경찰과 외국인이 지로의 누나를 놓고 줄다리기하는 코드를 심어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키득거리며 읽어도 뇌리에는 현재 사회의 문제의식이 자연스레 상기된다.

 

무엇보다 이 사람의 글감은 도대체 끝이 어디려나, 이라부 시리즈는 환자들의 다직종으로 폭을 넓혔다면 남쪽으로 튀어!는 글감의 토털패키지라 할 수 있다. 대충 기억해 보아도 이 두 권에 남녀, 좌우와 아나키스트의 정치 대립, 자연보호, 신화, 약육강식 등을 꽉꽉담았다. 더군다나 그 어느 글감도 시쳇말로 '쩌리'가 아니라 다들 한몫한다는 점이 혀를 내둘게 된다.

 

그러다보니 안 재밌기가 더 힘들다. 호광성 곤충이 야외전등에 이끌리듯 한번 잡으면 놓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니 주의하시라!




오두막

저자
윌리엄 폴 영 지음
출판사
세계사 | 2009-03-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자신의 상처로 스스로 지은 집, 오두막사랑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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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 피크닉을 즐기러 오두막을 찾은 맥, 그리고 그곳에서 딸 믹시가 유괴당한다. 유괴범은 아동만을 노리는 연쇄 살인마. 검거는 커녕 딸의 유체마저 찾지 못한 채 돌아온 맥은 그 후로 상심에 빠진 삶을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우체통에 쪽지가 한 통 도착한다. '하나님'이 보낸 그 쪽지는 맥에게 그 오두막을 다시 찾아오라고 요구한다. 반신반의하며 이끌린 오두막행. 그리고 맥은 오두막에서 진짜 하나님을 만난다. 책은 맥의 경험담을 친구인 윌리가 맥의 시선에서 글로 옮겨놓은 것이다.

 

경에서 언급했듯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명의 모습으로 하나님은 맥에게 나타난다. 다만 그들은 특유의 분위기를 가졌을 뿐, 절대 으름짱을 놓지 않으며 마치 친한 친구처럼 맥과 만남을 가진다. 그들은 맥에게 그동안 있었던 신과 인간의 역사를 알려준다. 또한 신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설명한다. 믹시 사건 이후로 망가진 맥을 치유하고 다시 신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 노력한다. 책에 드러난 하나님의 모습은 현대 기독교에서 그리는 모습과 사뭇 다르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심판자이며 처벌자이다. 하지만 책은 그를 그저 사랑에 충만한 존재, 인간과 관계하고 모든 걸 함께하는 것이 목표인 존재로만 그린다.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는 존재. 다만 자기를 사랑해 주었으면 하고 자기도 무한히 인간을 사랑하는 그런 존재이다. 처벌과 심판, 시비가름이 아닌 '관계'를 중시하는 신, 기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개념에 익숙한 자들에겐 분명 생경스러운 개념이다. 


부디 개신교인들이 읽어줬으면 하며 철저한 무신론자인 본인과 같은 사람은 글쎄올시다 딱히 와닿을 것까지는 없던 책.



여름으로 가는 문

저자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출판사
마티 | 2009-08-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SF 최초의 그랜드마스터' 로버트 하인라인의 대표작!SF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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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새로운 세상을 암시한다. 건너면 달라질 것 같은 기대감, 무언가 날 기다릴 것 
같은 두근거림, 때로는 두려움까지 동반한다. 그래도 우리는 문을 열어제낄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렇게 디자인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이 있으면 열어야 해!

 

때는 1970년, 군인 출신 주인공은 전공을 살려 가사도우미 로봇 개발에 전념한다. 이윽고 틀이 잡히고 친구를 파트너 삼아 사업을 시작한다. 매력있는 비서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시작되는 배신. 파트너와 비서는 주인공의 뒤통수를 치고 인간 냉동 장치에 넣어버린다. 기간은 30년. 그리고 맞은 2001년, 동면을 마친 주인공은 30년 동안 자기 회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저 두 남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조사한다. 생각과는 많이 다른 모습에 놀라고 일을 바로 잡기위해 다시 1970년대로 복귀하려는데..

 

시간은 일방통행이다(최근 과학자들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며 주목받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 피부로 느기기에는). 하지만 이에 역주행 할 수 있는 문이 있다면 어떨까? 이 물음을 현실화한 소설이다. 복수도 아닌, 일확천금도 아닌 소중한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썼다는 점에서 이 역주행은 벌금을 물지 않는다, 적어도 소설 안에서는. 하지만 현실에 적용시킨다면 그야말로 혼돈을 목격할 것이다. 사익과 복수 따위가 아닌 진정 대의와 선에서 이 문을 열어제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소설이기에 가능하고, 소설이기에 아름답고,소설이어야만 하는 이야기다. 1957년에 쓰인 작품이라 2000년을 그려놓은 부분에서 피식피식 웃긴다. 2000년에는 감기가 사라진다고? 웃기지 말라 그래! 10년이나 지났어도 내 코는 맹맹하다! 고양이 광팬이기에 표지에 낚여서 본 책이다. 좀 더 고양이게 무게가 실린 글이길 바랐는데, 읽다보니 SF소설이라 조금 띵했다. 띵했지만 나도 모르게 몰입해버리는 구성진 책이다.



헤르만

저자
라르스 소뷔에 크리스텐센 지음
출판사
낭기열라 | 2007-06-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탈모증에 걸린 소년, 헤르만의 이야기! 노르웨이의 국민작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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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지금 대머리이신 여러분들에게는 참 송구스런 말씀이나 되도록 피하고 싶은 그 두피상태. 한 올에 몇 만원씩이나 들여가며 새 머리를 심어서라도 탈출하고 싶은 그것. 얼마나 안 좋은 인식을 내품기에 호색한과 쫌팽이의 대명사로도 불리울까. 그 대머리가 사춘기를 앞둔 소년의 가르마를 노린다면?!

 

그렇지 않아도 괴짜기질이 있던 소년 헤르만. 엎친데 덥친 격으로 탈모증까지 선고받는다. 이에 본격 삐딱노선을 타기 시작한다. 어른들의 은밀한 관계에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날리기, 선생님께 대들기, 무단 결석하기, 교장실 창에 돌을 던져 깨부수기…… 이런 짓궂은 행동의 기인은 스스로를 흉측하다고 생각함에 있다. 흉측한 자기 대머리를 보이지 않기 위해 부모님 앞에서조차 모자를 벗지 않고, 학교에도 나가지 않고, 말걸면 툴툴대는 삐딱이 헤르만.

 

하지만 사람들은 헤르만을 영원한 삐딱이로 자리잡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하루종일 툴툴거리더라도 엄마와 아빠는 끊임없이 다정하게 대해준다. 가끔 찾아뵙는 병로한 할아버지는 언제 찾아뵈어도 즐거운 말상대이다. 그리고 다리에 개미가 있는 아주머니는 헤르만의 잘못을 눈감아주신다. 루비는 대머리를 보드랍게 쓰다듬어주었다. 이렇게 흉측한 대머리인데도. 이 모든 따듯한 대우가 방에 틀어박힌 헤르만을 나오게 만들고, 책가방을 메게 만들고, 크레인 위에 오르게 만들었다.

 

조건 없는 관심과 사랑은 삐딱이도 활짝이로 바꿔준다. 거울조차 보기 싫어하던 대머리 소년을 모자도 가발도 없이 거리로 나서게 만든다. 따라서 관심과 사랑은 훌륭한 고독 치료제이다. 여러분도 책 한 권으로 치유받아 보시길, 원작자와 번역자가 세세하게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의 말투로 풀어썼기 때문에 약효는 더더욱이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저자
박완서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2010-02-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우리 시대를 이끌어가는 대표작가 9인의 자전적 소설!현대문학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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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창간 55주년 기념 서적.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로 눈에 익은 출판사에다 기념 서적이라니 당연히 어떠한 자력에 이끌려 집어들었다. 이 몸은 쇳덩이오. 책은 박완서, 이동하, 윤후명, 김채원, 양귀자, 채수철, 김인숙, 박성완, 조경란 작가가 쓴 단편 9편을 담고 있다. 각 작품마다 작가의 개성이 담뿍 담겨 있어 단일 작가의 단편집보다 즐겁게 읽힌다.

 

이 책에서 이야기들은 언듯 따로국밥처럼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들을 얽어매는 코드는 분명 있을 것이라는 것이 예상이었고, 예상은 들어맞았다. 우선 표현양식은 다르지만 모두 '한'을 담고 있다는 점. 인기가수 휘성이 흑인음악을 하게 된 계기로 한국인의 정서와 '한'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범국민의 내면에 흐르는 이 한을 박완서는 전쟁으로, 이동하는 향수로, 윤후명은 모성애로, 김채원은 허무로, 양귀자는 되살아난 가족애로, 채수철은 고통과 발버둥으로, 김인숙은 눈물로, 박성완은 여정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한'에서 이어지는 코드일지도 모르나, 한국독자가 한국문학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한 맛이 뇌리에 남으며 소화된다. 시대 배경이 그렇고 가족 구조의 배경이 그렇다. 때문에 더 정이 묻어나는 것이다. 특히 김인숙이 쓴 해삼의 맛은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리던 명작들을 연상시킨다. 울음을 터트려 발산해낼 수 있는 슬픔이 아니라, 가슴을 주먹으로 망치질해도 풀리지 않고 빠져나가지 않는, 굳고 아련한 그 느낌.

 

오랜만에 한국문학다운 한국'현대'문학을 만났다. 출판사 이름과 아주 잘 어울리는 책이다.

 

 



드림셀러

저자
아우구스토 쿠리 지음
출판사
시작 | 2009-06-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꿈을 파는 남자'와 함께하는 기상천외한 여정!라틴아메리카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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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유명한 사회학자이자 대학교수인 주인공 줄리우는 대기업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경찰, 소방서, 심리학자 등을 대동해 그를 저지하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그 때 누덕진 옷차림을 한 낯선 남자가 올라와 줄리우에게 대화를 시도하고 머지않아 줄리우는 낯선 남자에게 설득당해 자살을 포기한다. 책의 말을 빌리자면 그 남자는 줄리우에게 꿈을 팔았다. 그리고 그 비루한 차림의 사내를 스승으로 삼아 함께 꿈을 팔기 시작한다. 줄리우를 시작으로 술주정뱅이, 소매치기 등 다른 제자들을 차례차례 받아들인다. 아직 세상에서 꿈을 찾지 못한 이들을 찾아 이 집단은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마치 예수와 열두 제자들처럼.

 

메시지

 

작품 속에서는 꿈이라고 표현하지만 이 개념은 고취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계속 세상을 떠돌며 고취가 필요한 사람들(꿈을 잃은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고취시킨다(꿈을 판다). 그리고 그 고취의 내용의 정 가운데에는 '인간성'이 있다. 모든 작은 에피소드들을 분석해 보면 꿈을 잃은 자들은 제가끔 이 자본주의와 신제국주의, 신계급주의 때문에 태어난 피해자들이다. 책은 위와 같은 이념은 사람에게서 인간성을 빼앗고 돈과 명예를 좇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스승은 이들에게 꿈을 파는 행위로 중요한 것은 인간성임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 것은 곧 작가 아우구스토 쿠리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아쉬운 점


세상사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원효대사 해골물"식 스토리는 이제 그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저자
바바라 오코너 지음
출판사
| 2012-01-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열한 살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달콤살벌한 현실!열한 살 소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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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가족을 버려, 집은 없어 무너져가는 차안에서 살아, 동생은 귀찮게 굴어, 
학교 친구는 떠나가. 아직 청소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소녀에게는 무엇 하나 제대로 된 배경이 없다. 비루한 배경에 이골이 난 소녀가 날리는 마지막 측면 승부.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는 계몽이 은근슬쩍 깔려있다. 그 점이 마음에 든다. 그런 점을 볼 때 무키 아저씨는 이 계몽을 전파하는 선지자나 다름없다. 자기 몸을 빌어 물질 없이도 행복하게 유유자적하는 삶을 은연중에 조지나에게 풍긴 것도 그렇고, 개를 훔친 것을 알고서도 모른 척 해준 점이 그렇다. 등장신은 극히 적으나 매우 인상 깊은 인물이다. 헐리웃 영화에 가끔 등장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그런 깨달음에 달한 사람. 

 

주인공 조지나가 보여주는 능동성에 주목한다. 기존 소설이었다면 저런 배경의 여캐릭터는 당연 신파극의 주인공 꼴이다. 반면 이 책은 철저히 능동형으로 그린다. 비록 수두룩히 얻어맞다가 날리는 울분에 찬 카운터 어퍼컷이 아니라 측면 승부 즉, 반칙에 그치긴 하였지만. 그래도 조지나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애초에 정면 승부라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는가. 그런 면에서 이 개도둑질에는 조지나의 혼신이 담겨 있다. 인간답게 좀 살아보자 하는. 이런 처절한 상황에서 나오는 발악은 남녀노소를 묻지 않는다. 이 점을 부각시키려 깔아 놓는 장치일까? 기존 관념에서는 수동적이며 보호의 대상인 여아를 능동의 주체로 삼은 점. 효과가 아주 뛰어났고 덕분에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리버보이

저자
팀 보울러 지음
출판사
| 2007-10-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영국 카네기 메달상 수상작 15세 소녀의 눈에 비친, '만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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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이야기 두덩이가 진행됨으로 미뤄보면 일종의 옴니버스라 할 수 있다. 하나는 할아버
지의 임종이요, 다른 하나는 강과 제스이다. 옴니버스의 백미라 하면 역시 물줄기가 한데로 뭉쳐질 때 오는 쾌락이리라. 작가는 리버보이를 기용해 강과 제스와 할아버지를 부드럽게 묶어냈다. 그런면에서 리버보이는 할아버지의 바람(願)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바람이라는 무형체가 리버보이로 의인화했다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돌연 제스앞에 나타난 리버보이는 할아버지의 바람을 담아 생전 못 이룬 그의 꿈을 손녀 제스에게 전한다. 그리고 리버보이와 함께 충실히 이뤄내는 제스. 세대를 뛰어넘은 완벽한 순도의 사랑이 전해져와 오케스트라 공연의 클라이막스를 듣는 것과 같은 감동이 가슴 속에서 따듯하게 피어났다.

 

강은 참으로 매력있는 소재이다. 강은 흐르고 흐름은 곧 연결을 의미한다. 물의 흐름, 할아버지에게서 제스에게로 이어지는 바람의 흐름. 그리고 그 강이라 부르는 흐름의 끝엔 항상 드넓은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그 흐름에 는 변함이 없으나 강에서 바다로 이름이 바뀌듯 할아버지의 삶도 그곳에서 다른 세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리버보이와 제스가 할아버지의 임종을 함께 공유한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그 과업을 제스에게 맡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시의 풀장밖에 모르는 제스에게 이 대자연을, 강을 소개해주려 했음이 아니었을까? 때문에 휴가 장소도 이곳으로 고른 것이고.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명백히라고 믿고 싶다. 나라면 껌벅죽던 내 할아버지가 그랬고 제스의 할아버지도 다르지 않을 거라, 그렇게 믿고 싶다.

 

이러한 순수문학과 만난지가 얼마나 되었던가.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순수문학이었다. 그리고 딱히 오랜만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정말 좋은 책이었기에 앞으로도 쭈욱 기억에 남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