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1999-06-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펴냈던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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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란 영화가 있다. 지금 내가 한 행동 하나가 미래의 커다란 변화를 만든다는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렇듯 말 한 마디, 현재 일어나는 자그마한 사건, 결정은 미래에 대해 소스라칠만큼 커다란 권력을 갖는다. 이 이야기 안에서는 자기 애인에게 편지로 쓴 몇 마디 농담이 루드빅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는다.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을 따와 패러디 해보자면 '참을 수 없는 농담의 무서움' 정도일까? 

 

그렇다면 과연 이 농담에 선과 악의 잣대질을 가한 것은 무엇이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책은 325페이지를 빌어 설명한다. <그 어떤 행위도 그 자체로서 좋거나 나쁘지 않다. 오로지 어떤 행위가 어떤 질서 속에 놓여 있느냐 하는 것만이 그 행위를 좋게도 만들고 나쁘게도 만든다.> 질서,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라고도 할 수 있는 그것. 그것은 루드빅이 뱉은 농담을 악이라 여긴다. 루드빅의 진정과 의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회와 질서의 뜻이 그렇다. 질서가 그렇게 말한다면 동무도 여인도 그렇다고 여긴다. 제3의 시각에서 본다면 소름이 돋는 광경이다. 그저 그때의 질서가 사회주의가 아니었다면 사전 의미 그대로 농담이었을  몇 마디가 한 남자의 젊은 삶을 때론 짓밟고 때론 쾌락을 좇게 만들며 다시금 주저앉힌다. 질서가 내게 준 이미지, 그 이미지가 평생 날 좌우한다면 그만큼 매정한 일도 없으리라. 내 이미지의 변화 가능성을 굳게 잠그는 질서에 이골이 난 적도,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있었으리라.

 

또한 책은 몇 단락으로 나뉘어 각 단락마다 화자가 바뀐다. 이점을 통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 행위를 받아들이는 이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잡아낼 수 있다. 감정이입의 대상인 화자를 바꿈으로 한 사건을 그 화자의 주관성에 담아 평가 할 수 있고 각 단락마다 이 '사건'을 보고 평가하는 눈이 다르다. 귀신 같은 썰풀이다.

 

루드빅의 삶은 마지막 피난처인 고향으로 돌아와 커뮤니티 속에서 안식을 찾으려 했지만 그것조차 굳이 말하자면 실패와 비슷한 결말로 치닫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변화의 희망이 아직 남아 있고 내가 몸담은 사회의 질서, 이데올로기가 나를 루드빅에게 했던 만큼 못박지는 못하리라는 작은 바람으로 견뎌보는 것이다. 김훈의 '공무도하'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매캐하면서도 그렇다고 끊을 수는 없는 담배 같은 그런 글이다.

 



관촌수필

저자
이문구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3-06-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본격적인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던 70년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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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이 아니고서야 내 태어난 곳 내 고장이 문학, 가요, 방송에 실리면 아무리 촌티나더라도 
눈길 한 번 더 가는 게 사람 마음 아닐까? 충남 보령 땅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관촌수필. 그 문학성으로 워낙 유명하기도 한데다 같은 고향 사람으로서 꼭 읽어야 할 책이었다.

 

큰따옴표 안에 즉, 대화 부분에 가둬진 낱말들을 다른 지역 출신 사람들이 읽으면 어떻게 와닿을까 싶다. 반은 외국어처럼 들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적어도 내 처지에서 보자면 그리움이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내가 잘못할 때마다 핀잔을 주시며 말씀하시던 '정흘칠 놈' 참 지금보면 그게 애한테 할소리유? 싶지만 충청도 욕 안에는 분명 끈적끈적한 정에다 푸욱 장 담가 놓은 웃음이 있게 마련이다. 아는 지명이 나올 때마다 반가운 마음은 또 어떻던가? 여섯 시 내고향에서 자기네 동네가 잡혀 나오면 괜시리 흥내시던 할머니들의 마음도 이해 못할 만한 것이 아니더라.

 

놓치지 말아야 할 점 하나가 있다. 그 시절 좋았지 하는 막연한 회상류 수필이 아닌 우리내 뼈아픈 역사를 담고 있음에 눈여겨 보며 읽어야 한다. 일제강점기가 지난 뒤. 시골 청년이 "옳치" 대신 "욧시!"하는 걸 그대로 옮김에 간담이 소스라침을 막을 수가 없었다. 6.25는 또 어떤가, 가장이 징병되어 가정파탄에 이른 집이 수두룩하고 그 수더분한 시골 사람들 입에 인민이며 자주이며 좌파이며 우파이며를 거들먹거리게 만들지 않았는가? 큰 고래들의 싸움에 그 나름 행복한 삶을 꾸려가던 새우등짝이 터져나간다. 없던 제도가 생겨나 마을 도덕을 대신하는 모습 등을 바라보며 급변하는 세상이 시골에 끼친 괴리감을 통감한다.

 

더불어 세월의 덧없음에 잔 낙엽을 훔치는 겨울바람 같은 싸늘함이 가슴을 지나간다. 1985년생, 할머니 할아버지께 들을 수 있던 그 구수한 사투리를 기억할 세대이다. 이런 사투리를 읽으며 ㅡ이렇게 말하면 좀 뭐하지만ㅡ해석이 가능한 세대이다. 90년대에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평생 들어보지 못했을 이 아름다운 사투리를, 우리 고유지역문화를 그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가치매길 것인가? 혹여나 먼 훗날 사어문학으로 취급해 가치가 빛 바래는 건 아닐까? 같은 고향 사람 글이라 더 그런지 몰라도 이런 막연한 안타까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황금비늘

저자
이외수 지음
출판사
해냄출판사 | 2005-06-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문단데뷔 30년 동안 출간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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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물을 때마다 변하는 답에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 때론 가차 없이 솔직해져서 물질을 위해, 때로는 이상을 위해. 결국 행복하기 위해 물질을 추구하고 행복하기 위해 이상을 좇는다. 하지만 이 행복을 찾는 답시고 너무 많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가? 물질과 이상에 우리 마음대로 이름을 짓고 때로는 원판과 다른 의미를 붙여넣기까지. 원판대로에서 오는 행복이 아닌 인조도구로 가공해 얻은 행복. 과연 참 행복일까 싶어지는 것이다.

 

살며 너무 많은 잣대를 들이 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물줄기를 타고 마지막까지 올라가면 선과 악을 가르는 거대한 잣대가 있을 테다. 선을 위한 악행은 선일까 악일까? 홍길동 같은 의적은 도적인가 의인인가? 마찬가지로 주인공 동명이는 소매치기일까? 의인일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잣대를 없애고 눈에 보이는 것이 가진 나름의 아름다움 그대로를 즐기며 사는 행복한 삶.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나에게도 안개를 헤엄치는 금선어가 나타나 줄지도 모를 일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 글은 동명이가 이끌어가는 1인칭 시점 글이며 회고라기 보다는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일을 적어내려간 글이라고 본다. 그리고 마지막에 동명이가 가장 나이가 많은 시절이 15살 정도로 나온다. 하지만 15살 소년과는 어울리지 않는 노인같으며 복잡한 말투는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깨달음을 얻고 그런 어휘를 구사할 나이에 들어선 동명이가 회상하는 형식을 띄었더라면 이런 점을 다 뒤덥고도 남았을 텐데.

 



마당을 나온 암탉

저자
황선미 지음
출판사
사계절 | 2002-04-15 출간
카테고리
아동
책소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겠다는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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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연이 닿은 것은 도서관 고등학생 덕이다. 하루가 멀다하며 도서관을 찾는 고3들, 그들의 도서대출을 맡은 사내인 관계로. 나이가 적은 것이 책을 선별하는 감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믿기에 불쑥 '재밌게 본 책이 뭐냐?' 물었다. 그는 이 책을 가져다 줬다. 상상도 못한 아동문학이라니. 하지만 역시 독서중독(?)소년이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을 과장 살짝 섞어서 말하자면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을 다뤘다고 확대 해석할 수 있다. 마당을 점령한 몇몇 동물들과 그렇지 못한 주인공 잎싹이 사이에 있는 갈등에서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갈등을 엿본다. 태어날 때부터 알낳는 닭으로 운명이 정해진 잎싹을 보며 민주주의라는 허울 뿐 기회균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시 말해 평등이 없는 우리 사회를 본다. 이런 메마른 배경을 딛고 단지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까보겠다는 일념, 즉 사랑 하나로 험난한 들로 뛰어나온 잎싹. 심지어 자기를 죽일 기회만을 노리던 족제비에게 복수의 일침을 가할 기회가 왔을 때도 보여주었던 그 용서.

 

그 숭고한 모험과 자비로운 사랑, 꺾이지 않는 의지. 비단 아이들에게 읽도록 시킬 것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더 읽어야 하고 더 배워야 할 책이다. 아이들에겐 나와 다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프랑스의 똘레랑스), 꿈을 좇는 의지, 양보가 불러오는 미덕을 가르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통조림공장 골목

저자
존 스타인벡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8-04-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존 스타인벡이 창조한 사랑스런 인물들의 유쾌하고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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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읽은 '달콤한 목요일'이 이 책 후속작이기에 안 읽고는 배길 수 없었다. 달콤한 목요일이 닥을 둘러싼 로맨스에 가깝다면 이 책은 마을 그 자체를 담았다고 본다. 1940년 대 미국 어느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그 마을 사람들의 삶을 다루었다. 그들의 삶은 삭막해보인다. 살인마가 칼을 휘두르고 다들 총을 쏴대는 그런 정이 없는 삭막함이라기보다 아쉬움이 주는 삭막함이랄까? 남이 뱉어낸 무심한 한 마디에 자살을 택하는 그런 꺼림칙한 아쉬움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는 곧 당시 시대상을 나타내는 것일 테다. 이렇게 삭막한 이들이라도 생물표본 만들기를 직업으로 삼는 닥에게는 거짐 종교와도 같은 경외심을 품는다. 책속 인물들은 다른 인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험담을 섞는데 닥에게 만은 떠받드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이 닥을 기쁘게 하려 이벤트를 준비한다. '삭막한 사람들이 준비하는 이벤트'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눈을 내용에서 책 그 자체로 돌려보면 아쉬움이 많다. 우선 번역과 편집에서 오는 아쉬움이다. 역자가 원문을 너무 존중한 나머지 직역에 가까운 번역을 했고 이는 곧 가독성이 뚝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읽는 내내 친숙하지 않은 문장들에 버거웠다. 이것은 출판사 편집부에서 잡아 줄 문제인데 물론 박봉에 야간작업하시며 피땀흘려 내신 책이시겠지만 부족하다. 원문이 지나치게 만연체로 가서 읽는 호흡이 가빨라 지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독신주의자를 독선주의자로 오타 낸 부분도 있다. 크게 봐서 재밌는 이야기를 가지고 한국판으로 옮기다가 그 재미를 잃었다고 본다.

 

 



공무도하

저자
김훈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9-10-0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기자 김훈의 눈으로 들여다본 세상 이야기!칼의 노래, 남한산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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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냅다 

퀘퀘한 담배연기와도 같은 단어. 그 단어들이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이고 다시 뱉어내는 빠르기로 스쳐간다. 이 말라붙은 간결체 문장들이 마치 사진 한 장을 보듯 객관성있게 정보를 전달한다. 사건이 흘러가는 모습과 풍경을 말이다. 지은이가 기자 출신임을 다시금 되돌아본다. 또한 정보전달에 충실하느라 묵혀두었던 감정들이 습기를 품고 만연체 문장에서 뿜어져 나온다. 만연체 문장을 읽어 나갈 때면 출신이 어찌되었든 역시나 소설이며 소설가의 글이다 싶다.

 

 이 책은 어둡다

많은 죽음이 나오는데 모두 자기 의지도 아니며 자기 잘못도 아닌 죽음. 선을 좇다가 맞은 희생이 아닌 악을 좇는 이들에게 당한 개죽음에 가깝다. 이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다면 차라리 스스로 눈을 가리어 어둠 속에 갇혀 버리고 싶을 만큼 적막이 만들어낸 끌어당김을 느낀다. 딱히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지도 않았다. 그저 사건들이 풀어져가는 과정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뼈에 사무치는 깊은 어두움이 있다. 이는 때때로 직접 이빨을 드러낸 악인을 묘사하는 글보다 더 섬뜩하게 다가오는데 미움보다 무관심이 더 무섭다는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메마름

이렇게 메마른 아수라장을 무릎과 팔꿈치로 땅을 짚으며 기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삶들을 다루면서도 감정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은 어찌 보면 너무하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감정의 동물인 인간에게서 감정을 제쳐놓고 보려할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짜 모습'은 치졸하고 애처롭고 당장 시야에서 내던져버리고 싶은 모습일 테다. 우리가 감정을 제쳐놓고 사람과 사람이 엮여사는 사회를 볼 때 드라나는 메마름, 아니 우리가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미 메말라 있는 그곳. 사람과 사람이 만든 사회가 아닌 욕심과 욕심 사이에서 힘있는 욕심이 차지해버린 사회. 텁텁함을 느낀다. 김훈의 글이 좋으나 그 좋음이 웃음을 자아내는 좋음은 아니다.

 



열외인종 잔혹사

저자
주원규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09-07-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얽히고설킨 네 명의 열외인종 잔혹사가 펼쳐진다!제14회 한겨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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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외인종 네 명이 펼치는 옴니버스

입만 열면 빨갱이 빨갱이, 시쳇말로 수구꼴통 노인네, 두개골 속에 들은 거라곤 명품과 정규직밖에 없는 된장녀, 봉사활동으로 나온 끼니를 삶의 영유수단으로 삼는 노숙자, 오늘도 피씨방 요금 떼먹고 달아나기에 바쁜 잉여 청소년. 이 넷이 각자 자기이야기를 이어가다가 한 가지 사건으로 얽히는 유쾌 잔인 옴니버스.

키워드는 양머리

언뜻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보이는 네 사람이 '양머리'하나로 묶이게 된다. 그 양머리는 노인네에게 반역 빨갱이, 된장녀에게 정규직이란 기회, 노숙자에게 메시아, 청소년에게 온라인 게임 2만포인트로 다가온다. 넷은 목숨을 걸고 몸을 내던진다. 물론 목숨까지 걸린 줄은 몰랐다 하더라도.

잔인한 천민자본주의

바로 앞 문단에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지만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 안에서 최하층에 속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땅한 수입이 없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지은이는 천민자본주의가 낳은 추하디 추한 모습을 배꼽이 달아나는 코미디로 다룬다. 당긴 방아쇠가 장난감 총에 달린 것이라 굳게 믿었지만 발사된 총알이 맞은 이의 두개골을 박살내 버리는 잔인한 상황. 또한 쏘지 않으면 내 두개골이 박살날 상황. 경쟁이 선의를 품지도 않았으며 경쟁에서 밀려나면 나아갈 삶을 차단당하는 정 없음. 그렇기에 밀려날 수는 없고 밀려나지 않으려면 더러운 손을, 잔인한 손을 써야하는 양심의 가책. 지은이는 이렇게 잔혹한 천민자본주의 최하층 사람들이 사는 삶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아쉬운 점

이 재밌음, 코믹함은 적당히 공부하고 신문 좀 읽고 한자 적당히 외운 지식층이 아니면 함께 웃을 수 없음이 아쉽다. 다행스럽게 한자가 적당히 익숙한 내 처지에서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지만. 본문에서 한 문장 끌어와 예를 들어 보겠다. 118 페이지 중간 쯤이다.

급기야 광록은 그러한 도취를 여과 없이 연출하고자 감행한다.

심지어 추상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문장이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 와닿지 않는다. 물론 이건 작가가 코믹함을 더하기위해 미사여구를 덧붙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습관이라 보면 되겠지. 위 문장은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더 한자풀이가 필요한 문장이 쌔고 쌨다. 친절하게 괄호치고 한자를 적어넣었지만 과연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참혹한 전락(轉落)의 참상과 사지백체(四肢百體)'란 글을 옳게 받아 들일 수 있겠냐는 말이다. 글의 대상이 분명하고 너무 분명하다.

또한 이건 아주 나 혼자 생각일지도 모르겠으나 사건을 끝내줬으면 했다. 아주 깔끔하고 휘밝게 어두운 구석없이. 미스터리를 남기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이 양머리 사태는 환상과 현실 중간에서 아리송하게 끝나버림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뭔가 풀리지 않은 응어리를 남겨서 아쉽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저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2007-11-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피워낸 두 여자가 만들어내는 인간드라마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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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를 이어가는 슬픈 여자들의 이야기

마리암과 라일라

둘은 남편을 공유(?)하며 처음으로 연결된다. 여느 아프간 사람이 그렇듯 여자를 노예처럼, 개처럼 부리기 시작하고 얻어맞는 나날이 길어진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는 또 전쟁이다. 둘은 이 집을 떠나기로 맘먹는다. 마리암이 큰 맘을 먹고 자기와 같은 여자의 삶이 이어져서는 안된다며 라일라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위대한 희생을 치른다. 같은 남편을 둔 부인 사이를 뛰어넘어 어머니와 같이, 친구와도 같이 그렇게 라일라 앞에 펼쳐질 찬란한 천 개의 태양처럼 빛나는 앞날을 위해서.

슬픈 여자들 이야기지만 그래도 역시 큰 흐름은 전쟁

아프간에서 가장 낮은 계층, 여자들의 삶을 그려내어 그 비참함에 깊이를 더했다. ㅡ책속에는 공산주의자들보다 살짝 더 낫다는 듯이 여자를 쳐다보는 눈빛까지 나온다. 나라를 빌어먹게한 사람들보다 살짝 더 나은 정도라니 어느 정도로 멸시를 받는지 상상이 된다ㅡ 책 뒷면에서부터 인터넷에서 나오는 서평까지 전부 여성성에 깊이를 두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큰 흐름은 전쟁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삶을 어떻게 파괴해가는지 극사실주의 화풍처럼 그러낸다. 때로는 우연을 가장하여 때로는 필연으로 소련ㅡ탈레반ㅡ미국으로 이어지는 전범국들의 행태를 평범한 삶에 눈 높이를 두고 다루었기 때문에 미어지는 가슴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또한 외세강대국에 지배를 받고 그 지배국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히듯 엎어져버리는 제도가 마치 혼돈과도 같은 점을 그려냈다. 이는 곧 한반도 위에서 사는 우리들에게도 다가오는 점이 많다고 본다.

메시지: 어디서나 그렇듯 피어오르는 희망은 있다

제목과 내용이 영 어울리지 않다가 제목이 희망을 나타냄을 알았다. 마리암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해 라일라에게 전해준 희망, 그리고 라일라가 앞으로 꽃 피우고 이루어낼 희망. 그래서인지 지금 흰 바탕에 검은 글자뿐인 화면을 바라보고 있지만서도 눈앞에 활짝 웃고있는 라일라가 사진이 되어 신문에 실려있는 모습이 쉽게 떠나질 않는다.



면장 선거

저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08-05-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선거는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야! 오쿠다 히데오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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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 시리즈 중에 한 권인 町長選擧. 역시 공중그네처럼 책 속에 있는 한 가지 이야기 제목을 따왔다. 이 시리즈는 이라부라는 괴짜 정신과의사와 환자들을 둘러싼 이야기다. 그리고 이번엔 거대 신문사 사장, IT 기업으로 대박난 젊은 사장, 젊음을 지키고 싶어 안달난 여배우, 섬으로 파견된 젊은 공무원을 환자로 다룬다.

중년인데도 어리광쟁이에 마마보이, 게다가 주사놓는 행위에 페티쉬까지 느끼는 괴짜 이라부. 물과 기름 같을 거라 생각되는 간호복과 고딕계 패션의 조합, 지저분한 말투에다 골초인 간호사 마유미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앞 문장에서 묘사했듯 부처가 와도 이 둘 앞에서는 '이거 순 돌팔이 아냐?!' 싶을 거다. 그 정도로 기존 궤도에서 벗어난 조합. 이 둘이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정말?

이야기들이 주는 것들

우선 이라부의 괴짜스러운 말투가 주는 재미를 들겠다. 어린이의 솔직함은 가끔 어른의 허를 찌르는 법이다. "왜 꼭 그렇게 해야 되는데?"라는 아이를 만난 적 있는지. 아랍어로 된 문제집을 푸는 느낌이다. 뭐라 제시할 답이 없다는 말이다. 튀면 괴짜취급받는 사회, 그 틀 속에서 자기 괴짜스러움을 전면개방하는 이라부 선생은 그런 어린 아이의 솔직한 날카로움을 닮았다. 

다음으로 치료해 나가며 얻는 교훈이라 하겠다. 시간배경을 지금 2000년대로 놓고 쓰인 소설이기에 등장인물들 이 겪는 정신병은 곧 우리의 정신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비록 이라부가 그 완치까지 가져가는 과정이 노골적이고 뻔뻔하고 환자 속을 뒤집어 놓긴 하지만 그건 소설의 재미로 치면 그만이고 결국 환자들은 저런 이라부의 뻔뻔함 뒤에 숨겨놓은 큰 뜻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 뜻을 받아들여 마음가짐을 가다듬고 완치. 이는 곧 마음가짐을 아로새기었기 때문이며 이 아로새김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며 스트레스 받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첫 째, 이라부를 반쯤은 신으로 여기고 써내려 간다는 점이다. 환자들이 현대를 살듯 이라부도 결국은 우리와 같이 현대를 사는 사람이다. 이라부도 언젠간 다루기 정말 까다로운 환자를 만나서 땀 삐질삐질 흘리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인간미가 있지 않을까? 사실 반쯤 신이던 이라부도 '町長選擧' 에피소드를 통해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방에 틀어박히는 모습을 보여줬다.(책 표지에 붙 은 띠에도 이 점을 강조했다ㅡ일본판의 경우ㅡ) 하지만 어머니께 전화한다는 위협 한마디로 방문을 열다니 '이거... 쉬워도 너무 쉽게 고민해결이잖아! 이게 광고할 만큼 큰 사건이야?!' 하는 생각이 앞섰다. 의사라고 스트레스가 없겠느냐, 불도저 같은 이라부도 철벽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흉부전문의사도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는 마당에.

둘 째, 교훈에 다양성이 없다. 하기사 심리치료는 어딜가든 마음편히 먹어라, 흥분을 가라 앉혀라, 좋은 면을 봐라. 이 세 가지 틀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이건 현실의 이야기다. 우리는 문학에서 환상을 찾고 일탈을 찾으려 읽기 때문에 이라부란 괴짜를 낳을 상상력을 상황마다 다른 교훈형태로 휘둘러 줬으면 한다.



무중력 증후군

저자
윤고은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08-07-1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현대를 살아가는 군중의 소외감을 경쾌하게 표현한 작품! 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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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을 꿈꾸는 자들에게.

어느 날 달이 하나 더 뜬다. 이것만 해도 충격이고 놀람이다. 달이 두개라니! 영어권에서는 유일한 무언가에 the를 쓰는데 이제 달에 the를 붙일 수 없게 되는 상황. 게다가 이 달이란 놈이 자꾸 새끼를 친다. 지구인들 사이에 우주가 의도한 현상이다, 중력을 무시하자, 거부하자하는 종교비스무리한 움직임이 꿈틀거리고(이부분에선 좀 약하지 않았나 싶다. 달이 여러개 뜨는 것과 무중력과 무슨 상관이람? 달은 지구보다 중력이 1/6밖에 안되니까? 겨우 그걸 단서로 단체가 일어난다고 보기는 좀 비약이 심하다) 사람들은 변하기 시작한다. 세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책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콕 집자면 '냄비가 식은 뒤에 오는 것들' 정도라 하고 싶다. 몇 안 되던 무중력주의자들이 달이 새끼치는 것이 마치 자기네 이론을(혹은 교론을) 정당하게 만든다고 여기고, 이 때다 싶은 언론은 이 개념을 연신 퍼트린다. 펄펄 끓어오르는 냄비처럼. 금새 세상은 어제와 다른 오늘, 무중력을 향한 절대적 찬양으로 바뀌어간다. 하지만 냄비는 금방 식어야 냄비근성에 맞아 떨어지지 않겠는가? 역시 이 무중력 냄비도 곧 식어버리고 사람들은 식어버린 된장국 속 텁텁한 두부처럼 변해간다.

작풍과 출판사간의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퓰리처라는 별명을 가진 여자를 거쳐 나타낸 언론의 힘, 거대 언론사가 삐뚤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그 선동효과, 한겨레에서 좋아할만 하고 상줄만 한 내용이라 생각. 생각지도 못했던 일탈이 쏟아지는 책이다. 그리고 이 일탈을 눈에 맺히듯 잘 풀어냈다. 일탈 하나 하나가 다 무릎치며 웃을 만큼 재밌기도 하고. 한 마디로 일탈 블랙코미디와 허탈의 조합. 덕분에 아, 이 책 영화로 나오면 꼭 보고 싶다란 생각을 품었다. 영화로 나와서 건물에서 픽픽 추락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표를 내던지고 문워크로 유유히 빠져나가는 과장을 꼭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