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창조

저자
이어령 지음
출판사
알마 | 2010-05-1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을 엿보다!한국의 대표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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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이 일흔 넘은 노인의 이름 앞에는 초대문화부장관, 전이화여대교수, 각종일간지 논설위원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참으로 그를 칭하는 수식은 '지성인' 하나로 족하다. 요전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에서 박웅현과 콤비를 짰던 강창래 인터뷰어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다는 듯이 이번엔 지성인 이어령을 찾았다.

 

이어령을 지성인으로 부른다는 점, 지성인, 그래 지성인은 무엇인가? 지나치게 추상에 쌓여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기에 지성인이라는 단어만으로는 그 뜻을 오롯이 이해하기 힘들다. 그냥 많이 똑똑한 사람 정도? 때문에 이어령의 짧지만 굵은 칼럼 몇 편을 접하면서도 '이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좋은 문장을 써내지? 이렇게 좋은 생각을 갖는 거지?'하는 궁금증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사실 강창래가 집필하고 알마에서 나온 책은 이 책 말고도 더 있다. 하지만 저 물음, 이어령은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좋은 글을 쓰나? 하는 물음이 유독 이 책을 우선으로 사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지성인 이어령이 아닌 파해쳐진 이어령을 만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다. 역시 만만찮은 노인네다. 그가 지나온 삶은 내가 300 페이지로 다 알 수 있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러니까 알려고 도전을 하면 실패가 아니라 도전과 동시에 포기하게 되는 그런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다. 이 점에서는 강창래도 지면을 통해 동의한다. 아니 강창래가 아니라 누굴 앉혀놔도 동의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포기다. 때문에 실제 이책의 집필가인 강창래는 이어령을 둘러싼 굵직한 몇 가지 테마를 다룬다.


그 첫째가 김수영 시인과 사설을 통해 대담을 벌였던 사건, 둘째가 이어령만의 그레이 존 이론, 셋째가 이런 지성인임에도 기독교의 세례를 받으며 영성의 세계로 발을 뻗은 점, 넷째가 현재 이어령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뭐 나의 리뷰가 항상 그렇듯이 본문의 내용을 자세하게 쓰고 싶지 않다. 책의 컨텐츠는 언제나 읽는 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몇 마디 하자면 첫째의 김수영시인과 벌인 불온시 대담은 집필자 강창래가 원문을 옮겨왔는데 그래도 너무 원문에 집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당시의 인쇄 유행 그대로 한자어는 고대로 한자로 쓴 것. 딱히 읽기 어려운 한자는 없었지만 확실히 눈에 익은 한글만 읽다가 한자가 나오다 보니 가독성이 떨어진다. 읽는 속도가 대충 30퍼센트 정도는 느려지는 것 같았고 매우 불편했다. 원문의 내용을 각색하자는 것도 아니고 한자 발음을 한글로 옴겨서 쓰는 것이 원문 파괴도 아니다. 근데 꼭 이 형식을 취해야 했을까?

 

원래 의도인 '이어령을 자세히 알고 싶다'는 내 의도는 실패했다. 앞으로 나올지 안 나올지야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어령평론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읽어야 했겠지. 문제를 푸는 수식을 잘못 선택한 내 탓이다. 하지만 이상 하게도 이어령이 가진 수면위의 일각은 다른 이들의 수심속 커다란 빙산보다 크게 느껴진다. 디지로그라는 생각, 그레이 존, 창조학교 등, 그의 일각 하나하나의 무게가 매우 묵직하고 그래서 흥미롭다. 지금부터 이어령을 알아가기에 좋은 발판이 될만한 책이다. 이어령의 지성이 폭발하고 만개하는 그의 원점, 그의 소설을 챙겨 읽어봐야겠다. 근데 한두편이어야지 원.

 



팬티 인문학

저자
요네하라 마리 지음
출판사
마음산책 | 2010-10-0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팬티 하나로 세계 문화를 재조명하다!요미우리 문학상, 고단샤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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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거의 몸의 일부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팬티. 이렇게 친숙한 팬티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요네하라 마리가 인문학을 빌어 풀어헤쳐준다. 이야기는 작가의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 십자가상을 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의문 하나. 저것은 팬티인가? 그렇게 시작된 팬티에 대한 궁금증을 성인이 되어서도 잊지 않고 간직하다가 40년이 흐른 후 본격 파해치기에 나서는 요네하라 마리. 작가의 궁금증에 기대어 우리 또한 팬티 인문학을 배워보자.

 

서명 '팬티 인문학'답게 책은 팬티로 보는 인문 전반을 다룬다. 예수상을 보고서는 저것을 팬티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알아 보기 위해 성서를 조사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당시 이스라엘 땅에서 살던 사람들의 의복까지 꼼꼼히 다룬다. 또한 작가는 어린시절을 체코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에서 보낸 만큼 구소련의 속옷에도 관심을 쏟는다. 그 외에도 팬티의 기원을 찾기 위해 세계 곳곳의 속옷문화시초를 찾아서 열심히 조사한 티가 난다.

 

특이한 부분은 책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줄창 훈도시라는 일본전통속옷이 등장한다는 점. 요네하라 마리의 아버지가 훈도시 매니아라서 더욱 그럴 만도 하지만 이유는 비단 이것만이 아닌 것 같다. 특히 일본에 기마민족이 속옷문화를 전파했다는 기존의 가설이 틀렸다는 증거들을 제시하는 부분. 일본 자체에서 발달된 속옷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은연중에 비친 부분 등. 자국문화옹호측면도 적지 않게 느껴졌다.

 

훈도시를 중점 다뤘다는 점은 한국 독자에게 그다지 흥미도 없는 점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과거 문화말살정책을 떠올리게 해 적반하장의 감정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국문화의 철저한 검증을 통해서 신제국주의라 불리는 서양식문화의 천편일률식 보급과 이에 따른 고유 문화의 퇴화에 적극 맞선 점은 인정해야 한다. 비록 이 책이 그 뿌리부터 위와 같은 점을 의도하고 지어진 책은 아닐지라도 책을 일다보면 자연히 요네하라 마리의 그런 의식이 전해진다. 물론 그렇게 한 국가의 고유 문화가 중요한 걸 아는 것들이 우리 한글을 말살시키려고 했냐?! 하면 또 할말은 없어진다. 다만 모든 일본인이 작가 같은 의식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작가가 전쟁을 일으키고 민족말살정책을 진두지휘한 관계자도 아니니 그점을 가지고 요네하라 마리에게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다고 책망할 수는 없겠지.

 

어찌되었건 흥미로운 주제에 골자 있는 내용, 풍부한 인문학 지식, 고찰해봄직한 세상의 흐름까지 충만하다면 충만하고 부족하다면 부족한 책이다. ㅡ작가도 인정했지만 팬티에 대해 평생을 다파해쳐도 완성 못할 분량이라 하니 더 충실하게 더 다방면을 다루지 않았다고 볼멘소리하기엔 살짝 무리가 있다. 아니 무리해서 요구하려고 해도 이미 작가는 세상을 떠났으니 불가능ㅡ 명백한 오역을 하나 발견했으나 출판사에 문의하니 깔끔하게 인정하고 다음 쇄에서는 수정하겠노라 약속도 받았으니 말끔 해결.



이기적 유전자

저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출판사
을유문화사 | 2010-08-10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과학계의 고전으로 꼽히는 리처드의 도킨스의 대표작!세계적인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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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초판이 나온 이래로 우리시대의 고전으로 불리는 이기적 유전자. 생물의 진실을 꿰뚫어 본 리처드 도킨스의 날카로운 시선을 따라가 보자.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의외로 간단하다. 그동안 집단 선택론자들이 주장했던 "동물 개체들이 이타성 집단을 이루어 서로에게 도움이 되며 살아간다."는 명제를 전면 부정하는 것. 이 부정에 대한 착실한 변명이자 근거를 차곡히 담은 책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유전자와 동식물의 몸 자체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유전자는 자기복제자로서, 이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서 우리 몸, 즉 운반자를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위 문장의 어투에서 느껴지듯이 이에는 분명히 주종관계가 존재한다. 유전자가 주, 우리 몸은 종이다. 이 때 유전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기성이다. 유전자는 자기복제자로 목적은 오직 복제와 복제된 자기를 후대에 남기는 것 외에는 없다. 다른 유전자와의 경쟁에서 자기 복제본이 더 오래 살아 남도록 하기 위한 이기성이 모든 생물의 시발점이란 이야기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 유전자는 운반자인 동식물의 몸을 만들기로 한다.

 

이 주장은 다윈주의 이후로 가장 경천동지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생물학계에서는 개인, 동물로 치면 한 마리, 식물로 치면 한 그루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 동물 한 마리의 행동에 대해 분석했으며 그러다보니 사람, 또는 동물이 집단을 이루는 것을 보았고 이것이 그들의 성선설과 비슷한 이타성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그동안 생물학자들이 주장해온 바였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에 확실히 찬물을 끼얹는다. 이 동족간의 이타성조차 유전자들이 자기 복제본을 더 오래 살아남게 하려고, 다시 말해 이기심으로 우리를 조종했기에 이타성을 띄었다니! 깜짝 놀랄만 하지 않은가? 책은 이에 대한 실례(實例)가 가득 담겨 있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는 후반부에 밈meme등을 다루며 인간이란 동물의 예외성을놓치지 않았다. 인간의 유전자는 자기 복제와 전파의 편의를 위하여 뇌와 의식을 진화시켰지만 되려 '독신주의'등으로 대표할 수 있는 자멸스러운, 즉 유전자라는 본능을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종이 된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인간은 의식적으로 이타성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은연 중에 섞어 넣었다. ㅡ내겐 이 부분이 확실하게 보였는데 일부 독자는 초중반만 너무 중점을 두고 읽었는지 리처드 도킨스에게 항의나 비관에 잠식된 편지를 많이 보냈다고 한다.ㅡ

 

이기적 유전자 초반 이래 30주년 기념으로 한국에서 전면 개정판이 나왔고 나 또한 이를 읽었다. 전에 읽은 같은 저자의 책인 '무지개를 풀며'에서도 그렇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가독성을 저해한다. 관련 전문분야 종사자가 아니고서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런 훌륭한 내용을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읽을 기회가 없다는 점이 사뭇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알기 쉽게 풀어 쓴 이기적 유전자', 나 '바보도 이해하는 이기적 유전자'같은 타이틀을 달고 나올 책을 목을 학같이 뻗고 기대해 본다. 그만큼 대중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줘야할 가치가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가독성은 전면개정판임에도 딱히 높지 않으나 이기적 유전자라는 컨텐츠가 너무 훌륭하고 기발한 발상이기에 후한 점수를 아낄 수 없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저자
임승수 지음
출판사
시대의창 | 2010-08-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마르크스의 철학으로 바라보는 세상!쉽게 읽는 마르크스 철학『원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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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맑시즘. 하지만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자니 통일 전 베를린 장벽 같은 막힘을 경험한다. 마르크스는 뛰어난 사상가였으나 독자의 이해와 관련되어서는 모르긴 몰라도 <자본론> 원문을 읽다가 집어던진 사람이 태산을 이루었을 거다. 이에 맑시즘의 핵심을 찌름과 동시에 이해하기 쉬운 말투로 가독성까지 훌쩍 올린 책이 바로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이다.

 

책의 썰풀이 방식은 이렇다. 원숭이 교수님이 등장하고 남녀학생과 만학도로 보이는 학생까지 총 4명이 대화를 해 나간다. 마치 실제 인터뷰를 기고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화의 사실성이 살아 있다. 학생들은 학생다운 질문을 던지고 원숭이 선생님은 될 수 있는 한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예시를 들고 개념을 풀어준다. 개념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이를 그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가독성을 높인 말투, 구조. 감히 단언하건데 맑시즘 해설서로서 이보다 더 쉬운 책은 없었다.

 

힘의 분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초반에는 독자를 잘 구슬려(?) 인문학과 철학의 필요성에 대해 사알짝 설득을 하다가 독자가 낚였다(?) 싶을 즈음에 푸욱 우려낸 진국 맑시즘을 다룬다. 이와 같이 적절한 증폭도의 흐름은 글 읽기를 수월하게 한다. 좋은 작가만이 가지는 능력이다.

 

맑시즘을 다룬 책인 이상ㅡ비판을 담지 않은 이상ㅡ 특정 정치성향을 띄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야 원래 사민주의자이기에 부담이 없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보수주의자들이 달갑게 받아들이기 힘들겠다 싶은 부분도 더러 있으랴. 하지만 이런 부분을 제껴놓고라도 전중반부의 맑시즘 쉽게 풀어해치기가 충분한 가치를 한다. 맑시즘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맑시즘 자체를 알고 싶은이들에게 추천을 아낄 수 없다.



무지개를 풀며

저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출판사
바다출판사 | 2008-04-18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리처드 도킨스, 과학의 판도라 상자를 열다 이 광활한 우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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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최고 저서 '이기적 유전자', 그리고 과학에 대한 변명. 이 500 페이지를 넘어가는 책은 어찌보면 변명할 용도로 시작되었다.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대중은 이해는 하면서도 '너무 냉소하다', '세상이 당신 말 같다면 지나치게 척박하지 않느냐?'하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대중은 과학이 문학, 시적 감각을 파괴한다고 생각했다. 그 예로 뉴턴이 무지개가 어떠한 신비 현상이 아니며 단순히 빛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7색을 띄게 된 것이라고ㅡ과학을 통해ㅡ분석했기에 무지개라는 단어가 문학성을 잃을 거라 우려했다. 즉, 과학은 문학에 반한다는 의견이다. 이에 리처드 도킨스가 변명에 나선다. 과학은 시적 감각을 해치지 않으며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며. 조심스레 미뤄보건데 리처드 도킨스는 수다쟁이다. 이 변명을 하고자 무려 500 페이지를 할애하다니!

 

분량이 많은 만큼 요약하기도 쉽지 않다. 과학 전반을 통틀어 대표 예를 들며 과학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글이라 하고 싶다.

 

쓴 소리 할 부분은 많다. 우선 통일성. 책 표지에 적힌 내용ㅡ우리 시대 최고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선사하는 경이로운 과학의 세계ㅡ처럼 책은 과학의 세계를 다루긴 한다. 한데 머릿말에서 들어가면서부터 작가의 집필의도가 무엇이었나를 상기해보면 글쎄다 싶다. 뭐니 뭐니 해도 초기 의도는 변명이다. 과학은 이런 이런 점에서 냉소한 것이 아니며 시적 감각을 파괴하는 것또한 아니라는 변명. 하지만 책은 이에 중점을 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이 대부분이다. 애초에 집필의도가 변명이 아니었고 책의 제목 또한 무지개를 풀며라는 뉴턴의 업적에 대한 대리변명식이 아니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거라 본다. 또한 표지에서'특유의 유려한 문장과 문학적 비유로 친절하게 엮어 낸다'라고 했는데 편집진이 뭔가 착각한 게 아닐까? 유려하긴 한데 문학적 비유? 글쎄올시다..친절함? 그렇지 않아도 존재자체로 어려운 전문용어들을 이렇게 이해하기 힘들 게 비꼬아 쓴 글이 친절하면 파리도 새다. 얼마 전에 읽은 후쿠오카 신이치의 저서들이 친절한 혹은 친근한 가족 같은 썰풀이였다면 이 책은 한 45촌쯤 되는 친척의 친근함이다. 관련 전공을 배우거나 가르치는 이나 아무리 어렵게 꼬인 이해하기 힘든 표현도 잘 이해하는 이해력의 천재들에게는 즐겁게 읽힐지 모르겠다. 비록 알찬 컨텐츠로 꽉찬 책이었지만 읽기에 수월하지 않으면 그 책의 존재 의미는 쉽게 바랜다. 적어도 나에겐 여러모로 읽기 힘들었다.

그래서 바라는 것은 확실히 해주었으면 한다는 점이다. 대중서인지 전문서인지. 대중서로서는 부족한 부분 많음, 전문서로서는 감히 내가 나서서 이렇다할 수 없지만 훌륭함.



작가 수업

저자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출판사
공존 | 2010-08-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도러시아 브랜디의『작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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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방학을 회상하자. 방학은 휴식의 기간이지만 또한 밀린 부담의 기간이기도 했다. 탐구생활 따위로 대표되는 과제 중 어린 마음에 가장 큰 부담이었던 것은 바로 일기이다. 밀리고 밀리다 보면 어느새 한 달치가 넘어가던 일기. 유년 시절의 일기로부터 대학의 리포트, 성인이 되어서는 보고서까지 끊임없이 삶을 괴롭히는 글쓰기. 그 글쓰기를 업으로 사는 작가들의 스트레스란 말론 다 못 할 것이다. 이에 1934년 이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기 위해 도러시아 브랜디가 나섰다. 2012년 현재로서는 나서도 너무 일찍 나섰다 싶지만.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은 다른 글쓰기 향상 서적들과 엄청난 차별화를 둔다. 그것은 바로 기교가 아닌 내면 트레이닝이다. 물론 플롯을 잘 구성하는 등 기교는 분명 글쓰기에 필요한 것이나, 작가의 내면, 즉 심리라는 텃밭이 비옥하지 않고서야

기교라는 작물이 잘 자라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 일환으로 처음으로부터 강조하는 것이 의식과 무의식을 구분하라는 지침이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되 어느 것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양변을 골고루 계발시켜야만 좋은 글이 나온다 한다. 이론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책은 이 내면을 계발시키는 실제 과제를 건넨다. 작가의 인도를 따라 차곡차곡 꾸준히 따라가다보면 우리도 곧 글쟁이의 길로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시각과 주안점이 그동안의 책들과는 상당히 다르며 설득력 있다. 놀랄 만한 점은 이 책이ㅡ앞에서도 말했지만ㅡ 1934년에 지어졌다는 것이다. 70년 이상을 최고의 작가 지침서라 불리며 군림한 책, 작가 지망생이라면 읽어서 손은 없을 것이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

저자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08-06-13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일본 산토리학예상 수상! 일본 신문ㆍ잡지 서평담당자가 뽑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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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동적평형으로 한 번 만난 적이 있던 후쿠오카 신이치의 다른 책이다. 동적평형이란 책이 동적평형이라는 상태에 대한 전문서와 비슷한 느낌을 풍겼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장르를 섭렵하였다고 평하고 싶다.

 

책은 우선 회상기(記)로 시작한다. 작가가 미국에서 연구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맨해튼의 주변 경관을 묘사하며 에피소드를 하나 건넨다. 부드럽게 이야기는 작가의 전문분야인 생물학으로 이어지고 장르는 전문서로 바뀐다. 개인에 따라서는 복잡하고 어지럽게 받아들일 지도 모를 전문용어들이 만개한다. 이 장르 전개변화 속에서 후쿠오카 신이치가 훌륭한 박사이기도 하지만 또한 뛰어난 글쟁이임을 깨닫는다. 쌀밥을 한 숟가락 먹고 김치를 베어먹듯, 고기를 한 점 먹고 야채를 집어먹듯. 자칫하면 질릴 만한 전문지식의 줄에 적절히 작가 개인의 에피소드를 섞거나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섞어 넣는다. 이 조합이 묘하게 연결되어 쉽사리 질리는 기미가 오지 않는다. 오히려 목표한 페이지까지 읽은 뒤에도 뒷내용이 궁금해 잠시 책갈피 해두기가 아쉬워지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쭈욱 문과학생이었던 내가 이과 전문 지식에 이렇게 빠져들게 만들다니. 더이상의 설명은 무용.

 

책의 메인 테마는 '생물에 대하여'이다. 인간의 호기심과 욕심은 생물의 세포를 분자 단위 아니 더 정밀한 단위까지 해부해 볼 수 있도록 고취시켰다. 그 작업의 선단에 있던 후쿠오카 신이치, 이 사람의 작지만 우주를 품은 물음 '생물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어 수년간의 연구를 거쳐 답을 농축하는 과정이 이 책이다. 그리고 그 답은 매우 의외이며 또는 매우 평범하다. 책에서 확인해 보시길.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저자
박웅현 지음
출판사
알마 | 2009-08-2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인문학으로 창의력을 발산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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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의 현대생활백서 시리즈 CF를 기억하시는지. 휴대폰이 더 이상 전화를 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배경'이라는 포인트를 꼭찝은 수작이다. 이 시리즈를 만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 이 남자를 인터뷰어 강창래가 인터뷰했다. 잠깐 잠깐, 현대생활백서가 별로였다고? 그렇다면 '그녀의 자전거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라는 카피의 빈폴광고는 기억하시겠지! 이것도 박웅현 작품이다.

 

 커버 카피에도 써 있지만 결국 박웅현이 광고를 잘뽑아내는 비결은 인문학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그리고 박웅현의 모든 광고는 어렴풋이 때로는 강렬하게 인문학을 담는다. 다시 말해서 박웅현의 광고는 인간중심이다. 이게 먹히는 비결이다. 또한 책은 광고의 본맛인 창의력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박웅현은 인문학 소양이 쌓이면 자연스레 창의력이 발휘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좋은 광고의 조건인 시청자와의 소통, 망상보다는 실천 등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광고에 관심있는 독자는 자연스레 빠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질투가 날 만큼 구조와 주관이 뚜렷한 책이다.

 

인터뷰어 강창래의 날카로움, 기나긴 관련 경력답게 노련한 질문, 박웅현의 쿨하고 창의력 있는 답변. 둘 중 한명이 여자로 태어났다면 결혼시켜주고 싶을 만큼 죽이 잘 맞는 웰메이드북! 내포한 인문지식, 서적관련 정보도 많다. 메모가 필수였다

 

인용을 하나 하자면 ㅡ아이디어는 창의가 문제가 아니다.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려 주변 사람을 설득하고 성공하게 만드는 노력의 문제다.ㅡ

 



컬처 플러스

저자
이원희 지음
출판사
한국학술정보 | 2008-04-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이 책은 이 년여 동안 전북도민일보에 매주 연재했던 글을 모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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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 문화 진단서. 82가지 현상, 인문, 문학, 사회, 예술을 망라한 "문화"를 글쓴이가 진득한 견해를 담아 풀어내었다. 교양 그 자체를 위한 독서, 그에 딱 맞는 책이다. ㅡ2008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수상ㅡ

 

특정 문화 현상에 대해 단호한 어투를 가지면서도 위대한 예술이나 작가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한 문체가 역시 한국인의 글답다. 함부로 견해를 피력해서는 안 되는 문화를 다룰 때는 자기 스탠스는 밝히나 적당히 말미를 무르는 것에서 글쓴이의 현명한 자세를 느낄 수 있다. 프로 저널리스트의 글 같은 느낌까지 전해져 온다.

 

아쉬운 것은, 우리말을 아끼자가 본 내용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정작 글에서 한글 파괴가 다문다문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윌리엄 브레이크적(的)은 현대 일본어에서 보이는 어투이며 '~같은'의 일본식 표현인데 글의 정제과정이 아쉽다.





우아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저자
매튜 메이 지음
출판사
살림Biz | 2010-01-12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완벽함보다 강력한 우아함의 힘!세상을 뒤흔든 혁신 뒤에 감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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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 우리는 보통 우아함을 고결함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한다. 이에 작가는 우아함의 본의미를 상기시킨다. 우아함은 바로 대칭, 유혹, 생략, 지속성이 모두 겸비되어 있을 때를 말한다. 그리고 이 우아함을 추구하는 방법에 대해 서술한다. 서양식 썰풀이 과정이 그렇듯(요즘은 딱히 서양작가로 한정시킬 방법이 아니지만) 풍부한 예를 첨부한다. 예를 들자면 애플의 아이폰 판매 전략에서 볼 수 있는 광고의 생략, 자연계에서 쉬이 발견할 수 있는 대칭의 매력, 그 외에도 종류와 계열을 불문한 예시가 읽을 맛을 돋운다.

 

특히 강조되고, 나 또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 바로 생략이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해결 할 때 무엇을 더할까? 하고 떠올린다. 이에 작가는 과감히 무엇을 버릴까? 를 고민하는 것이 우아하다 말한다. 버리고 생략하여 우아해진 예시또한 충분하게 실려 있다. 얼마전 세계를 훑고간 심플 라이프 열풍을 다시 떠올려본다.

 

실로 기성 가치관에 징소리와 같은 파장을 울려댈 만큼 참신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우리가 우아하고 편리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사실은 귀찮고 불편했던 것이었음을 콕콕 꼬집어 내어, 자극도가 심히 높은 책이다. 우아함으로 성공한 사례, 극복한 사례, 우아함에 끌린 사람들을 책을 통해 엿보며 나의 추구점을 벼리는 계기가 되었다.


읽으면 세상이 달라 보이는 책, 얼마전 읽은 동적평형이란 책에 붙은 문구이다. 동적평형에 필적하는 훌륭한 책을 발견하여 기쁘다. 제 3의 눈이 뜨인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