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적 글쓰기

저자
김혜경 지음
출판사
생각의날개 | 2010-09-13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꽉 막힌 글문을 틔워주는 살아 있는 글쓰기 전략공학적 글쓰기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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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공계 학생들과 전공자들의 글쓰기 능력이 뒤떨어져 있다고 본다. 이는 맞는 말이다. 실제로 이공계에서 보고서 따위의 서류를 작성할 때 엉망인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오히려 문과 출신 학생을 채용하는 이공계 회사가 늘고 있다는 기사 또한 본 적이 있다. 이처럼 올바른 상호 대화(글을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도 이 대화에 포함된다 할 수 있다)가 중요시 되는 요즘. 이공계 전공자의 작문능력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나온 책이 공학적 글쓰기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 실패한 책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의 조건은 세 가지가 있다. 1. 합목적성 2. 가독성 3. 소설이라면 기승전결, 그 외의 장르라면 서본결론의 적절한 분배. 참으로 오랜만에 세 항목에서 모두 실패한 책을 만났다. 이제부터 왜 이런 강도 높은 비판을 던지는 지 설명하겠다.


우선 합목적성. 책 표지에서부터 이 책의 목적은 '글쓰기가 괴로운 사람들을 위한 실용 글쓰기의 모든 것'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전혀 해답이 되지 못하는 내용은 진작에 목적을 잃은 듯하다. 이 책은 '실용'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대부분의 주장이 이론에 입각했을 뿐이다. 실용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실었으면 내용도 예를 들어 실제 글쓰기 예를 보여주고 이부분을 이렇게 바꾸면 더 좋다든지, 여기는 이렇게 쓰는 게 더 낫다든지가 실릴 만도 한데 작가는 이론만 줄창 파들어가기에 바쁘다. 실제 텍스트 작성에 대한 팁보다는 '어떠어떠한 면에 어떠어떠한 점을 살리도록 마음에 새기고' 와 같은 붕뜬 이론만 실려 있다. 이건 실용이 아니다.

 

가독성은 그야말로 참상이다. 표지에 드러난 목적과 어긋나는 내용을 읽는 것 자체가 고난인데다가 작가의 썰풀이는 그야말로 고지식하다. 도대체 글쓰기를 도와준다는 책에서 '자연적 원인만으로 제한된다는 점이다. 이는 초자연 현상이라고 불리는 영역에 과학적 방법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과학의 타당한 주제가 되기 위해서는 초자연 현상이 자연적 원인으로 분석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라니, 놀리는 건가? 이 문단이 대체 공학적 글쓰기와 어떠한 관련이 있으며 관련이 있다손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머리속에 그려지지가 않는다. 이는 일례일 뿐이며 상당 부분이 이렇게 부유하는 이론중심 서술에 치우쳐 있다. 재밌는 점은 책의 202 쪽에 각가가 스스로 '원리중심의 이론 습득은 지양해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이다. 이럴 때 쓰라고 사자성어가 있다. "자가당착"

 

또한 이 책은 다른 글쓰기 책들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길게 연장하여 대략 300페이지를 채워넣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 내용이 공학적 글쓰기의 필요성, 혹은 당위성이다. 보통 실용 글쓰기 책에서 이런 부분은 아예 빼버리거나 챕터 하나의 분량을 줄까 말까이다. 대체 진심으로 글을 쓴 목적이 무엇이길래 이런 책이 나오는가?

 

종합하여 이 책은 'technical writing'이란 이론 자체를 소개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책일 뿐이다. 그 설명방법은 고지식하며, 목적으로는 책의 실질 내용과 상관 없는 실용, 살아 있는 글쓰기를 내세웠으니 집안으로 치면 삼대가 망하는 집안 수준의 책이다. 감히 말하길 이 책으로 글쓰기 실력을 신장해보려는 이공계 학생들, 꺼낸 지갑을 도로 집어 넣으시라. 책표지의 문구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꽉 막힌 글문을 틔워주는 살아 있는 글쓰기 전략' 아무리 출판도 장사라고는 하지만 '꽉 막힌 글문으로 읽기 어렵게 쓴 다 죽은 글쓰기 전략'이 백번 더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