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상)(혜원세계문학 54)

저자
빅토르 위고 지음
출판사
혜원출판사 | 1993-08-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인간의 죄와 양심을 통해 19세기 중반의 사회상과 고귀한 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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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자들. 어린 시절 위인전 장 발장으로 만났던 그 이야기의 가감없는 원전. 충분히 디벼파고 코를 묻을 이유가 갖춰졌다. 그저 읽을 뿐! 바로 요약 들어가겠다.

 

 

장 발장 이야기의 시작

 

장 발장은 살기 위해 빵 하나를 훔친다. 이게 요즘 세상이라면 생계형범죄로 감면이라도 받을 터인데 안타깝게도 배경은 1800년대. 감면은 커녕 어찌저찌 탈옥 시도까지 합산해 형량은 눈덩이처럼 불어 19년에 이른다. 형을 마치고 나와 범죄자 딱지는 통행증에 고스란히 남아 돈이 있어도 밥집은 밥을 안 주고, 여관은 방을 안 주고, 그레저레 한 교회로 굴러 들어가 숙식을 부탁해 보는 장 발장. 장 발장은 그곳에서 미리엘 주교를 만난다. 이 주교야말로 발장君의 멘토요, 이 책이 쓰여진 이유다. 주변 사람들이 이 퀘퀘한 놈을 교회에서 재울 수 없다는 데도 미리엘은 흡사 누구의 공사판 밀어붙이기식으로 장 발장 숙식허가법안을 불도저처리한다. 또한 먹여주고 재워준 은혜도 모르고 괘씸하게 은식기와 은촛대를 가지고 야반도주까지한 장 발장이 경찰에 의해 되잡혀 왔을 때에도 너그럽게 "그 것들은 훔친 게 아니라 내가 준 것이오, 허허허" 하며 선의의 뻥카까지 날려주시는 자비로움. 이 때부터 장 발장의 생활은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미리엘 주교의 이 뻥카가 단순 뻥카가 아니야. 아 그분처럼 살테야.' 와 같은 깨달음을 얻고 그야말로 소통하고 빈부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아니하며 어려운 자에게 기꺼이 복지의 손길을 내미는 21세기에 진정으로 필요한 인간상이 눈을 뜨는 순간이다. 장 발장은 2010년 한국에서 태어났어야 했어!

 

 

장 발장과 팡틴

 

그 시각 다른 곳에서는 본격 프랑스의 오렌지족 청년 넷과 네 여성이 흥청망청 유흥을 즐기고 있었다. 그 네 여성 중 한 명이 바로 팡틴이라는 아낙이다. 네 여성은 오렌지족에게 기생생활을 하였는데 갑자기 이 사내들이 편지 한 장 남기고 자취를 감췄다. 기생충에게 숙주를 떼어놓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된장녀에게 돈으로 허세부려줄 먹이남이 사라진다니! 당장 먹고살기가 막막해지는 순간. 순식간에 몰락하는 아낙들의 지갑사정. 더군다나 팡틴은 리더격인 오렌지청년의 아이까지 배고 있었던 것! 출산하고 숙주를 잃은 굶주린 기생충 생활을 하던 중 팡틴은 여관 부부가 제 딸을 종처럼 부릴 줄은 꿈에도 모르고 여관에 아이를 맡기고 다달이 돈을 보내는 계약을 한 뒤 돈을 찾아 떠난다. 한편 자잘한 선행을 베풀고 살던 장 발장. 어느 순간 새 사업아이템에 눈이 번쩍 뜨여 일확천금을 거머쥔다. 요즘의 S모기업으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횡포와는 정반대로 장 발장의 공장은 지역사회발전에 이바지했고, 중소기업을 착취하지도 않았기에 이를 공로로 인정받아 전과 19범은 그 이름을 숨긴 채 시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팡틴이 이 공장에 근로자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매달 돈을 어디로 보내는데다 편지도 꼬박꼬박 쓰는 걸 수상하게 여긴, 미들네임으로 '오지랖'이 적격인 왠 아줌마가 모략을 꾸미고 팡틴을 공장에서 내쫓는다. 또 대의명분은 있는 오지랖퍼라 '내가 내쫓는 게 아님, 공장주가 시킨 거임'이라는 술수를 부려 팡틴은 자기의 부당고용해제가 오로지 장 발장의 권위남발인 줄만 알고 싸늘하게 식어간다. 그러나 일은 사필귀정. 결국 임종즈음에야 장 발장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 죽어가는 마당에 자식사랑은 남아서 여관에 맡긴 딸래미를 보살펴 달라며 눈을 감는 팡틴. 이에 개과천선한 장 발장의 마음이 안 흔들릴 수야 있겠는가? 곧 장 발장은 팡틴의 딸 로제트를 찾아 나선다.

 

 

 장 발장과 로제트

 

겨우겨우 로제트를 찾아낸 장 발장. 로제트의 꼴은 진흙탕에서 치즈조각 찾기를 막 마치고 나온 새앙쥐처럼 꾀죄죄하기 그지없었다. 미칠듯한 부성애에 끓어오르는 장 발장. 여관 주인에게 거금을 물리고 로제트를 제 딸같이 키운다. 키우면서도 전과자의 인생이 흔히 그렇듯이 신분을 숨겨야 하고 때로는 예전 사장시절에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보은받아 성당에서 몸을 숨기며 살기도 했다. 그렇게 어엿한 숙녀로 로제트를 키워낸 장 발장. 딸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아버지는 한없이 딸을 사랑하고 해피엔딩으로 흐를 그 때쯤.

 

 

 장 발장과 마리우스

 

공원에 나와 산책하길 즐기는 부녀, 그들에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로제트에게 말쑥한 신사가 흑심아닌 흑심의 뻐꾸기를 날린다. 이 청년이 바로 마리우스. 마리우스는 정의감에 넘치는 변호사이며 왕정파인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공화정의 옳음을 깨달은 청년이다. 그러던 중 장 발장은 이 마리우스의 뻐꾸기를 눈치챈다. 갑자기 밀려드는 상대성 박탈감. 어떻게 키운 딸인데! 그 후로 장 발장은 어떻게든 둘을 떼어놓으려고 물밑작업을 벌인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마리우스에게 반한 한 여자아이가 장 발장에게 이사가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뻥카를 날리고 이에 꼴깍 속아 넘어간 장 발장은 서둘러 로제트와 영국으로 갈 채비를 한다. 아 하필 이 때 마리우스는 전장에 나가 있는 것인가? 운명은 장난꾸러기 우훗! 한참 정부군과 시위를 하고 있던 마리우스는 급하게 떠나게 되었다는 로제트의 눈물서린 서신을 받고 '난 곧 죽을테니 잘사시오 내 사랑'하는 리플을 떠넘긴다. 한데 이 리플이 로제트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장 발장의 검열에 들고 장 발장은 또 그놈의 개과천선 아우라가 발동하여 증오하던 이 청년을 구하러 나선다. 결말까지 얘기하면 누가 읽겠나? 나만 스포쟁이로 추궁당할 뿐이지. 이정도로 마치겠다.

 

 

 마치며

 

초등학생 시절 생계형범죄자의 개과천선에 지나지 않았던 위인전이 이러한 배경을 가진 소설일 줄이야. 더군다나 이 책은 빈민들의 참상과 구호호소, 가진 자들의 패악 고발, 권선징악 같은 다분히 소설스러운 요소들을 제껴놓더라도 19세기 초 프랑스 혁명기의 왕당파와 공화정파 간의 분쟁을 고스란히 그려내었기에 가치가 높다. 실제로 빅토르 위고는 현지 답사를 했다고 한다. 디테일이 살아날 수밖에. 또한 극중 인물의 행동과 말투를 빌어 작가의 성향이 드러난다. 빅토르 위고는 공화정지지자였다. 소설속 대개의 괴팍한 인물은 왕정파로 그려지며 선인은 공화정파로 그려짐이 그렇다. 그리고 사람보다 법이 앞선다는 소설속 경찰들의 행태는 최근 한국에 있었던 왜곡된 법치주의양상과 공권력 오남발을 떠올리게 하여 괜시리 더 정독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참고로 그런 패악스러움을 자랑하던 경찰의 대표 캐릭터 자베르는 장 발장의 인간다움에 자신의 정의가 패배함을 보고 자살을 택한다. 한 시대의 괴리를 가슴에서부터 우러나와 폭로하고 괴리를 온전히 떠맡은 빈민층의 고통을 호소함으로써 시대의식을 표출했던 빅토르 위고. 그리고 그 결과물인 레 미제라블. 다방면에서 훌륭하고 트집잡을 데 없으며 대략 150년 전에 나왔으나 현대에도 그 빛이 바래지 않은 걸작이다.


사족으로 레 미제라블이 한국에서 더더욱 먹히는 이유! 첫째, 작품 자체가 훌륭하다. 둘째, 출생의 비밀, 얽히고 설킨 혈연관계, 시기 질투 훼방성 뻥카의 연발. 이거 완전 한국 막장드라와 플롯이 같잖아? 이러니 먹힐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