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잘해요

저자
이기호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2009-11-1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어수룩하고 모자란 두 청년의 사과 대행업!재기발랄한 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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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어 웃음이 나오는 상황. 그렇듯 강한 감정은 되레 역방향의 표현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이 책은 심리묘사를 될 수 있는데까지 아끼며 오직 상황을 써내려간다. 미사여구라고 부를 만한 구석은 단 한 군데도 찾질 못했다. 대단하다. 글쓰는 이도 사람이고 사람이 글을 쓰는데 감정을 숨기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가끔 몇몇 글은 화려한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기 마련인데 그런 욕심을 이렇게까지 참을 수 있나 싶다. 문학평론가는 이것을 '탈권위'라고 표현했다. 글쓴이가 감정표현이란 권력을 손에서 놓고 읽는이에게 맡긴다니 엉덩이가 들썩거릴만큼 자유롭지 않은가? 적어도 내가 읽은 소설 중에 이런 소설은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짐짐하지가 않다는 점이 놀랄 만하다. 묘사를 자제하고 오로지 상황설명만으로 이끌어가는데도 책을 읽는 동안 감정이 꿈틀거린다. 이 읽는이에게 맡겨둠이 스티븐킹의 The mist 같이 결말을 흐리는 독자개입과는 아주 딴판이다. 이미 글쓴이가 다 내던져준 이야기에 결말만 상상하라는 것이 기존 독자 개입이었다면 이기호의 새로운 시스템은 골격만 주어주고 살은 읽는이가 붙여보라는 문체이다. 텁텁할 것 같았던 건빵을 베어물었더니 가득 사과잼이 들어있는 그런 예상 못한 즐거움이다.

 

소재 선택도 빛난다. "사과는 잘해요." 누군가 주인공과 친구에게 뭘 잘하냐 물었을 때 나온 대답이다. 다른 건 다 손방이라도 사과 하나는 끝내주게 하는 그들. 사과가 부족하다 싶으면 잘못을 만들어서라도 사과해야 직성이 풀리는 두 사내의 유쾌씁쓸 사과대행비즈니스. 기대하셔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