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저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출판사
북스토리 | 2010-08-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경제도, 사랑도, 인생도, 모든 것이 최악이다!모든 것이 최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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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작은 마을 공장 경영자다. 경제위기를 가까스로 몸사리며 넘어왔고 소규모이긴 하지만 어엿한 공장이라 부를 만한 공장을 만들어 냈다. 일은 먹고 살 만큼은 들어오는데 지인이 유혹한다. 확장하라며. 확장을 하게 되면 융자가 필요하다. 이 융자를 내려면 더 큰 담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가족에게 돈을 빌린다. 그런데 그렇게 조아리던 은행측은 융자를 철회한다. 동네 사람들도 문제다. 공장 소음 문제로 공장 가동 반대 입간판을 세우기도 하며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해 압박해온다. 그러다가 대표격인 주민을 우연히 치게 되어 막대한 위자료가 기다린다.


또한 당신은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에 질려 집안을 뛰쳐나온 스무살 건달이다. 자잘한 절도로 입에 풀칠을 하다가 야쿠자와 연관되어 빚을 지게 되고 이를 갚기 위해, 그리고 친구의 꾀임에 가게 금고를 턴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 돈을 가지고 혼자 튀었다. 야쿠자는 여자친구를 감금하고 돈을 가져오라며 협박한다.


또 당신은 은행원이다. 재혼한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스스럼없이 대해주셨지만 딸려온 여동생이 비행소녀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재미라곤 하나도 없는 직장에서 억지로 가게된 신입사원 환영캠프에서 지점장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동료와 선배들에게 털어놨지만 돌아오는 건 부당한 대우뿐.  


먹고 살기 어려운 세 사람의 기묘한 옴니버스. 그들은 은행강도라는 폭발점에서 접점을 찾는다. 철저한 방관자 오쿠다 히데오. 이 작품에서도 변함없이 그런 자세를 고수하지만 '시사'라는 방식으로 감정 개입을 하는 특징은 여전하다. 이 작품에서는 특히나 위기 시점에서 위 세 세사람이 보여준 '어이없는 배려'들이 그러하다.  옴니버스는 탄탄한 짜임새 빼고는 성립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짜임새는 풍부한 사전지식에서 나온다. 이 작품의 짜임새가 매우 훌륭하다는 점에서 오쿠다 히데오가 얼마나 발벗고 조사에 열심이었는지 넘겨짚어볼 수 있다.


단점으로 역자가 회화체를 지나치게 직역하여 어색한 부분이 있었음은 사실이나 원 플롯이 가지는 흥미로움과 몰입 정도를 저해할 정도는 아니다. 한 마디로 동정과 연민과 광기가 폭발하는 우리시대의 자화상격 소설.





제1권력

저자
히로세 다카시 지음
출판사
프로메테우스출판사 | 2010-03-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자본의 인맥도로 20세기 근현대사를 관통하다!20세기 근현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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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하는 골드핑거 


007 시리즈가 이야기로서 성립하는 근원. 그것은 바로 악의 대두 골드핑거이다. 이자(혹은 이자들)는 흑막 속에 존재하며 세상의 제악을 총괄하고 부를 축적한다. 그런데 골드핑거가 실존한다면?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는가? 

현존 최강국 미국은 왜 지금과 같이 문제의 온상인가. 그 근원을 히로세 다카시는 아주 우연히도 사진 두 장을 대조해보며 추측하기 시작했다. 토머스 모건(토머스 X 모건)과 토머스 H. 모건이 그 두 사진의 주인공이다. 그들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 저자는 '모건' 가문에 주목했고 차례차례 그들이 골드핑거임을 증명해나간다. 그들이 어떻게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으며 ㅡ 이때 미국 2대 부자 가문인 록펠러도 성장하기 시작하고 모건과 록펠러는 끈끈한 파트너가 된다 ㅡ 누구와 유착하여 미국 자체를 송두리째 잡아먹게 되었나, 더 나아가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며 이익을 위해서는 전쟁 발발도 서슴지 않게 되었나. 이것은 음모론이 아니다. 사실에 의한 추리 그리고 그 추리가 검증되어 다시 굳건한 사실로 마무리되는 책이 바로 이 제1권력이다. 

역대 미정권들의 각료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모건-록펠러의 심부름 개에 지나지 않음을 증명하고 그들은 모두 모건-록펠러 연합의 자회사와 깊은 연줄이 있음을 밝혀낸다. 이 한줌의 악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미국의 세계강탈사. 미국의 영향이라면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직격탄을 맞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비록 실용서로 활용할 가치는 전무하지만,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단점은 그저 안 읽히는 데 있을 뿐이다. 책의 서두에서도 밝혔듯 수많은 고유명사들이 퍼즐처럼 엮여 있어 완독하는 데는 상당한 고생이 필요하다.



이상 전집

저자
이상 지음
출판사
가람기획 | 2004-05-2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박제가 된 천재' 이상 깊이 읽기 - 시, 수필, 서간. 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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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은 포기다. 

이상의 글을 읽는다는 말은 곧 포기함을 의미한다. 흩어진 퍼즐은 다시 짜맞출 수 있다. 허나 이상의 글은 맞춰지지 않는 퍼즐이다. 공식에 숫자를 대입하면 해가 나온다. 허나 이상은 해를 회피한다. 포기를 전제로 한 글읽기. ㅡ유명한 <날개>나 <12월 12일> 같은 작품은 어느 정도 이해력의 범주에서 용해가능하게 쓴 것도 같다.ㅡ 독자가 한두 단편을 읽고서 손사래를 칠 만도 하다. 다빈치의 코드는 풀렸다. 그러나 이상 코드는 여전히 불가해하다. 

또한 이상의 글은 포기다. 매 작품은 자살을 다룬다. 죽음을 다룬다. 극중 주인공들은 때론 무언가 의지를 보이기는 하나 반드시 포기한다. 시종일관 허탈한 말투이며 '해보았자'의 코드가 흐른다. 포기가 형상화 된 죽음은 직접적으로 때론 간접적으로 자살을 암시하며 마무리된다. 사소하게는 계집질부터 종국에는 목숨까지 이르는 이 포기의 강줄기는 여간한 각오로 덤비지 않으면 안 된다. 

동시대의 작가들은 크게 작게 일제강점의 부조리한 면을 드러내는 측면을 갖는다. 이상의 글을 읽으며 그런 면이 전혀 없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ㅡ때론 동경을 이상향으로 삼기까지 한다.ㅡ 그렇게 불가해한 코드들과 형이상학적 구조에도 이상이 읽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만큼 이상의 글은 순수하다. 너무 순수해서 불순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