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토벨로의 마녀

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7-10-1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내 안에 숨겨진 마녀를 일깨우라! 연금술사 작가, 코엘료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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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1) 작가는 항상 안경을 걸치고, 절대 머리는 빗는 법이 없다. 늘 화를 내거나 우울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는 술집에서 역시나 헝컬어진 머리칼에 안경을 걸친 다른 작가들과 격론을 벌이는 데 일생을 바친다. 작가는 매우 '심오한'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제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치며, 가장 최근에 출간된 자신의 책을 몹시도 혐오한다.

2) 작가는 자기 세대로부터 절대 이해받아서는 안 될 책임과 이무를 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따분한 시대에 태어났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동시대인들에게서 이해받는 건 천재로 간주될 기회를 송두리째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확신한다. 작가는 자신이 쓴 문장을 끊임없이 다듬고 수정한다.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산천 개 내외인데, 진정한 작가는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제외하고도 사전에는 아직 십팔만 구천 개의 단어들이 남아 있는데다,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잖은가.

3) 작가의 말을 이해하는 건 동료 작가들뿐이다.그럼에도 작가는 남몰래 동료를 경멸한다. 그들은 결국 문학사에 수세기 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는 영광의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들이니까. 작가는 '가장 난해한 책'이라는 영예를 안기 위해 동료들과 경쟁한다. 이 싸움에서 승자는 가장 읽기 어려운 책을 쓰는데 성공한 사람이다.

4) 작가라는 사람은 기호학, 인식론, 신구체주의 같은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명사에 조예가 깊다. 누군가에게 겁을 주고 싶으면 이런 말을 들먹이면 된다. "아인슈타인은 바보야." 혹은 "톨스토이는 부르주아의 광대였어".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아니꼬워하면서도, 그 자리를 뜨자마자 상대성이론은 엉터리이고 톨스토이는 러시아 귀족사회의 옹호자였다고 떠벌리게 될 것이다.

5) 작가는 여자를 유혹하고 싶을 때마다 냅킨에 시 한 편을 써서 건네며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작가입니다." 언제나 통하는 방법이다.

6) 작가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학비평을 한다. 그는 비평가로서 동료들의 작품에 후한 점수를 준다. 그러나 그가 쓴 평론은 반은 외국 작가의 인용구로, 나머지 반은 '인식론적 단락' 이니 '융화된 2차원적 삶의 비전' 같은 표현 따위로 점철되어 있다.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감탄할 것이다. '참 똑똑한 사람이야!' 하지만 막상 책을 사기는 꺼린다. 인식론적 단락 앞에서 쩔쩔매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7) 작가는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늘 남들이 듣도 보도 못한 제목을 댄다.

8) 작가와 그 동료들에게 한결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책은 세상에 단 한 권뿐이다. 바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이 작품을 깎아내리는 작가는 없다. 하지만 책 내용을 물으면 횡설수설한다. 정말로 그걸 읽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 파울로 코엘료 "흐르는 강물처럼"의 프롤로그에서



포르토벨로의 마녀에는 수많은 '벗어남'이 담겨 있다. 

첫째로, 주제다. 그동안 '신'에 담겨진 성별은 남성성이었다. 가부장적 전통을 계승한 이들은 전능한 지배권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러나 포르토벨로의 마녀에 나오는 신은 여성이다. 그리스 신화 따위에서 제우스의 성놀이 상대일 뿐이고 서로 질투싸움이나 하던 아낙들, 철저한 남성 중심 사고가 빚어낸 왜곡의 피해자들, 그녀들이 이제 메인무대로 오른다. 또한 기존의 남성신 중심 스토리가 권위적이며 절대적인 심상을 드러냈다면, 대지의 여신 가이아로 대변되는 여성신의 이미지는 곧 모두의 어미, 끌어안고 다독이며 격려하는 신으로 드러난다.

둘째의 벗어남은 바로 종교이다. 한동안 '덴 브라운' 소설을 위시로 하여 반기독교 픽션, 팩션이 쏟아져 나왔다. 허나 이 또한 최근의 일이고 전통적으로 종교, 특히 크리스트교는 긍정적인 묘사되었다. 다시 말해 종교는 숭배할 대상이었지 비판의 대상은 아니었다. 여기서 코엘료는 다른 길을 걷는다. 아테나를 모함하고 소송까지 아끼지 않는 인물로 꽉막힌 목사를 설정하는 것 이를 통해 기존 종교들이 갖은 폐쇄성을 비판하는 노림수를 성실히 수행한다. 더불어 미디어도 아테나와 그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왜곡하고 과장함으로써 이 꽉막힌 목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셋째로, '스승 패턴'을 때려부수는 시각이다. 기존 소설 플롯의 스승은 가르치는 자, 제자는 배우는 자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를 해체한다. 코엘료는 스승과 제자를 모두 배우는 자로 설정한다. 동양의 청출어람과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권위, 특히 교육자와 피교육자 간의 역사 깊은 갑을 관계. 이 틀을 파울로 코엘료는 보란 듯이 벗어난다.

마지막으로, 화자 시점이다. 이 책은 마치 다큐멘터리 한 편을 글로 옮겼으면 이랬으리라 싶을 만큼 특이한 시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아테나를 둘러싼 각 인물들이 독백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 이런 식의 텍스트를 접하면 독자는 어떤 효과를 누릴 수 있을까. 우선 객관적인 사실관계가 큰 틀로 잡힌다. 그러나 개인의 동일한 사건에 대한 묘사는 제가끔 다를 수 있다. 이 점에서 코엘료는 "손 안 대고 코 풀기" 방법을 동원한다. 기존의 전지적 시점이나 1인칭 시점 소설은 어떤 형식으로든 작가가 개입하여 각 인물의 성격을 묘사해야 한다. 전지적 시점에서는 직접적으로, 1인칭 시점에서는 주인공의 감상이나 대화체로써. 그러나 인터뷰 형식을 차용하면 이 캐릭터 파악 작업이 독자의 손으로 넘어온다. 내려놓기와 벗어나기는 이음유의어이다.

어느 방면에서든 "발군"이라는 호칭을 수식어로 받는 전문가는 제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파울로 코엘료 또한 이에 속하는 저자이다. 그리고 이는 기존 형식을 벗어나 독자와의 친근감을 형성, 적절한 고발성을 띠며 건네주는 작은 속 시원함으로 전해진다. 파울로 코엘료의 벗어남은(脫) 독자들을 끌어들이는(集) 아이러니한 벗어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