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

저자
이문구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3-06-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본격적인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던 70년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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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이 아니고서야 내 태어난 곳 내 고장이 문학, 가요, 방송에 실리면 아무리 촌티나더라도 
눈길 한 번 더 가는 게 사람 마음 아닐까? 충남 보령 땅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관촌수필. 그 문학성으로 워낙 유명하기도 한데다 같은 고향 사람으로서 꼭 읽어야 할 책이었다.

 

큰따옴표 안에 즉, 대화 부분에 가둬진 낱말들을 다른 지역 출신 사람들이 읽으면 어떻게 와닿을까 싶다. 반은 외국어처럼 들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적어도 내 처지에서 보자면 그리움이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내가 잘못할 때마다 핀잔을 주시며 말씀하시던 '정흘칠 놈' 참 지금보면 그게 애한테 할소리유? 싶지만 충청도 욕 안에는 분명 끈적끈적한 정에다 푸욱 장 담가 놓은 웃음이 있게 마련이다. 아는 지명이 나올 때마다 반가운 마음은 또 어떻던가? 여섯 시 내고향에서 자기네 동네가 잡혀 나오면 괜시리 흥내시던 할머니들의 마음도 이해 못할 만한 것이 아니더라.

 

놓치지 말아야 할 점 하나가 있다. 그 시절 좋았지 하는 막연한 회상류 수필이 아닌 우리내 뼈아픈 역사를 담고 있음에 눈여겨 보며 읽어야 한다. 일제강점기가 지난 뒤. 시골 청년이 "옳치" 대신 "욧시!"하는 걸 그대로 옮김에 간담이 소스라침을 막을 수가 없었다. 6.25는 또 어떤가, 가장이 징병되어 가정파탄에 이른 집이 수두룩하고 그 수더분한 시골 사람들 입에 인민이며 자주이며 좌파이며 우파이며를 거들먹거리게 만들지 않았는가? 큰 고래들의 싸움에 그 나름 행복한 삶을 꾸려가던 새우등짝이 터져나간다. 없던 제도가 생겨나 마을 도덕을 대신하는 모습 등을 바라보며 급변하는 세상이 시골에 끼친 괴리감을 통감한다.

 

더불어 세월의 덧없음에 잔 낙엽을 훔치는 겨울바람 같은 싸늘함이 가슴을 지나간다. 1985년생, 할머니 할아버지께 들을 수 있던 그 구수한 사투리를 기억할 세대이다. 이런 사투리를 읽으며 ㅡ이렇게 말하면 좀 뭐하지만ㅡ해석이 가능한 세대이다. 90년대에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평생 들어보지 못했을 이 아름다운 사투리를, 우리 고유지역문화를 그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가치매길 것인가? 혹여나 먼 훗날 사어문학으로 취급해 가치가 빛 바래는 건 아닐까? 같은 고향 사람 글이라 더 그런지 몰라도 이런 막연한 안타까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