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저자
에릭 파이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1-04-0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집주인 몰래 벽장에 숨어 산 일본 여성의 실화!2010년 아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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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 장롱에서 1년간 몰래 살고 있었다면? 이 섬뜩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나가사키.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함께 살펴보자.

 

우선은 장르 자체가 이미 보장받은 팩션이다. 지난 번 어떤 책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일단 팩션이라는 점에서 보통 소설은 반쯤 먹고 들어간다. 소설이 인간을 가장 자극하는 부분이라면 바로 대리체험인데 그것의 바탕에 실제 사실이 깔려 있다고 한다면 독자는 주인공의 손가락 동작 하나에서도 발걸음 하나에서도 나와 일체됨을 느낀다. 이것이 문학에 있어 팩션의 힘이다. 나가사키 또한 실제 일본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이 기사로 나고 에릭 파이가 그 기사를 접한 뒤 소설로 옮겼다.

 

일본의 이야기를 서양인이 풀어내고 있다는 점도 신선하다. 일본문학은 이미 여러번 노벨문학상을 거머줬다. 그리하여 고유 일본풍 문학이 이미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아무리 유려하게 번역을 해놓는다 한들 일본인 작가가 쓴 일본문학은 그 독특한 맛이 배어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독특한 맛은 주로 독창성에서 온다. 망가와 애니메이션이 발전한 나라. 곧 독창성, 개성이 풍부하게 발전하기 좋은 밑거름이다. 작가인 에릭 파이는 이 독창성을 똑 따왔다. 주된 이야기 자체가 '나도 모르게 내 집에서 일 년 넘게 산 여인'이지 않는가. 허나 그 문체는 어디까지고 서양인의 문체이다. 동아시아만의 여백의 미를 인정하지 않는다. 바닥에 네모낳게 떨어진 햇빛을 묘사하고 그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 감정묘사를 철저히 하는 문체 등. ㅡ옮긴이인 백선희는 작가의 간결한 문체를 칭찬했으나 이 이야기를 일본인 작가가 지었다면 얼마든지 훨씬 간결하고 차라리 여백까지느껴지는 글로 태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ㅡ 일본만의 독창성을 서양인 고유의 문체로 담아낸 제 3의 이야기가 바로 나가사키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용상의 훈훈함이다. 그 고난과 역경과 좌절과 불신속에서도 결국 인간의 가능성, 마치 참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이 기존 구조주의문법의 속박성을 깨부수고 인간은 얼마든지 무수한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하며 희망을 주고 그로 인해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것과 같은 그 인간의 가능성을 제시한 점을 들고 싶다. 결국 이 여인과 주인공은 삭막한 현대사회에서 버림받은 인생들이다. 그 한계에 달하여 주인공은 무방비할 수밖에, 여인은 침입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이것은 침입이 아니라 고독과 고독의 충돌이다. 작금과 같이 이웃이 시체가 되여 몇주동안 썩어나가도 전혀 알 수가 없는, 서로가 냉랭한 사회에서라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이것은 결코 침입이나 만남 따위의 가벼움이 아니다, 충돌이다. 이 충돌의 타격에도, 주인공은 재판장에서 여인을 배려한다. 여인은 출소한 뒤 다시 주인공에게 편지를 남긴다. 이것은 스톡홀름 신드롬 따위가 아니다. 인간 본연의 상호 신뢰. 그리고 그것이 피해자와 침입자간의 충돌에서도 피어오를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의 메시지이자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책은 여인의 편지로 끝을 맺는다. 이 편지에 주인공은 과연 답장을 했으려나 그것만이 유일한 궁금함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시작을 충돌을 겪고 다시 융합함을 믿고 싶게하는 책이다.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해.